정부가 50년 만의 주세(酒稅) 개편을 통해 맥주와 막걸리는 종량세로 전환하되, 소주는 현행 종가세를 일단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1969년부터 적용중인 종가세는 가격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데 비해, 종량세는 알콜 도수와 양에 비례해 세금을 더 매기는 방식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이하 연구원)은 3일 오후 개최한 '주류 과세 체계 개편에 관한 공청회'에서 종량세 전환을 골자로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원이 내놓은 시나리오는 ①맥주만 종량세 전환후 다른 주종은 중기적으로 개편 ②맥주·탁주만 종량세 전환 ③모든 주종을 종량세로 전환하되 맥주·탁주 이외 주종은 시행유예 등 크게 3가지다.
먼저 맥주만 종량세로 전환하고 나머지 주종은 마스터플랜을 세워 중기적으로 종량세로 개편해나가는 방식이 일단 유력하게 거론된다.
맥주 과세를 우선적으로 개편하는 건 국내생산 맥주와 수입 맥주간의 과세표준이 달라 조세 중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국산맥주 과세표준엔 이윤과 판매관리비 등이 포함돼있지만 수입맥주엔 빠져있다.
따라서 종량제를 도입하면 국산맥주는 세부담이 줄어 '4캔에 1만원' 시대가 열릴 수 있고, 고가 수입맥주나 수제맥주의 가격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저가 수입맥주는 세금이 늘어 가격도 오를 전망이다.
연구원 홍범교 연구기획실장은 "조세중립성 회복이 종량세 전환의 타당한 명분이 될 것"이라며 "세제가 소비자들의 소비와 선호에 주된 영향을 미치는 정책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두번째 방안은 맥주와 함께 탁주도 종량세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고급 원료를 사용한 고품질 탁주가 출시되면 제품 차별화를 통해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세번째 방안은 모든 주종을 종량세로 전환하되, 맥주와 탁주 등을 제외한 다른 주종은 일정기간 시행시기를 유예하는 방식이다. 종량세 체계가 고품질 주류 생산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홍 실장은 "음주의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건 알코올 함량이지 주류의 가격이 아니다"라며 "외국도 대부분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궁극적으로는 모든 주종을 종량세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격적인 종량세 전환은 업계와 소비자에게 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큰 만큼, 일부 주종은 먼저 도입하되 나머지 주종은 5년 또는 특정기간 시행을 미루자는 얘기다.
①번 방식을 도입할 경우에도 일본이나 EU(유럽연합)처럼 알콜 도수가 높을수록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고도주·고세율'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연구원측은 설명했다.
홍 실장은 "주종에 따라 다소 세부담이 증가하는 점, 고가 수입제품의 세부담이 다소 줄어드는 걸 용인해야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며 "인구 감소로 많은 나라에서 총음주량과 함께 주세 세수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종량세 체계로 전환하면 인플레에 의해 실질적인 주세 부담이 줄어 음주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덜 지불하게 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며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해 종량세율을 매년 자동 조절하는 방식 △수년에 한번씩 종량세율을 조정하는 방식 등의 검토를 제안했다.
정부의 최종 주세개편안 확정을 앞두고 열린 공청회에서 이처럼 3가지 방식이 제시됨에 따라, 맥주는 종량세로 바뀌되 소주는 현행 종가세가 유지될 전망이다. 또 막걸리도 종량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서민의 술'로 꼽히는 소주의 경우 도수가 상대적으로 높아, 종량세가 적용될 경우 세금이 크게 늘어 가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역시 도수가 높은 위스키는 대부분 고가여서, 종량제로 바뀔 경우 오히려 세금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게 당국 판단이다.
소주와 위스키 모두 현행 과세체계에서 증류주로 분류되는데, 소주만 따로 떼어 과세체계를 재편할 경우엔 WTO(세계무역기구) 규정 위반 소지도 있다.
당초 정부는 지난 4월말 주세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업계 혼란과 의견수렴' 등을 이유로 한 차례 연기한 끝에 이달중 최종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2019-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