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끝에 나온 보유세 개편안이 당초 예상했던 수준보다 크게 후퇴하면서, 투기성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일명 '동결효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두 달여 논의 끝에 3일 내놓은 종합부동산세 개편 권고안은 그야말로 '찻잔속의 미풍'으로 평가된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매년 5%씩 올려 4년뒤 없애고, 종부세율은 과세표준 6억원을 기준으로 0.05%에서 최대 0.5% 올리자는 게 골자다.
재정특위 강병구 위원장은 "공평과세와 조세제도 합리화로 조세정의를 실현하는데 역점을 뒀다"고 자평했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권고안을 적용했을 때 예상되는 연간 증세 효과는 기껏해야 1조 1천억원. 지금과는 집값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11년전 참여정부 당시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택의 경우 27만 4천명이 연간 900억원의 종부세를 더 내게 된다. 단순 계산해도 1명이 더 내는 종부세는 32만 8천원. 한창 치솟을 때는 '달마다 억씩 뛰었다'는 고가 아파트의 한 달치 보유세가 2만 7372원에 불과한 셈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내놓지나 말지"란 탄식이 나오는 까닭이다. 투기세력을 비롯한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신호만 주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헨리조지포럼 이태경 사무처장은 "이번 권고안이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 목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며 "부동산으로 상징되는 자산 양극화 완화,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확충, 조세형평성 제고, 투기심리 억제 가운데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유세는 단순히 하나의 세금이 아니라 경제의 틀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용할지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며 "문재인정부의 비전과 철학에 심각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과세 대상이 얼마 되지도 않는 종부세 개편조차 '미봉'으로 일관한 마당에 공시가 현실화 등 재산세 개혁은 '기대난망'이란 것이다.
이번 권고안대로라면 시가 15억원 아파트를 보유한 다주택자가 내년에 더 내는 세금은 6만원에도 못 미치고, 30억 아파트를 보유한 다주택자도 102만원을 더 내는 수준에 불과하다.
보유세 실효율도 2016년의 0.16%에서 0.02%p 오른 0.18%에 그치는 수준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0.33%의 절반가량이다. 미국은 1.04%, 캐나다는 0.91%, 가까운 일본도 0.54%인 걸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실정이다.
특히 집값 인상분에 비해 보유세 부담이 극히 미미한 데다, 지난 4월에 이미 양도세 중과로 퇴로까지 막아놓은 상황이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일명 '동결 효과'가 현실화될 거란 우려가 커지는 지점이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정세은 소장은 "이 정도의 미약한 개편으로는 향후 개발 호재 등이 있을 때 부동산 광풍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며 "실수요가 아닌 투기성 보유자들이 매물을 내놓을 이유가 없어보인다"고 우려했다.
"부동산 투기로 돈벌기 어렵다는 심리를 유도하기에도 역부족이고, 기다리면 오르겠지 하는 심리만 한층 강해질 것"이란 얘기다.
권고안을 전달받은 기획재정부는 오는 6일 정부 안을 발표한 뒤 내년 세법개정안에 반영해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재정특위 권고안보다 강화된 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논평을 내어 "땅부자, 재벌기업을 비켜간 구멍 뚫린 권고안으로는 공평과세나 자산불평등 해소는 어림없다"며 "명동에 200억원대 빌딩을 소유해도 종부세 한푼 안내는 엉터리 과세 기준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재검토를 촉구했다.
2018-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