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국제노동기구)에 한국인 최초로 고용정책국장이 된 이상헌 박사가 '향후 2년간 최저임금을 15%씩 인상하면 고용 감소를 부를 수 있다'는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결과에 대해 "부정확하고 편의적"이라고 비판했다.
KDI는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 헝가리 등 해외사례를 감안해 최저임금과 임금중간값 간의 비율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 감소 효과를 예측했다.
이를 통해 KDI는 향후 최저임금 인상률을 15%로 유지하면 2019년 9만 6천명, 2020년 14만 4천명으로 고용 감소 영향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같은 방식으로 올해 고용 감소 효과가 최소 3만 6천명, 최대 8만 4천명으로 추산됐지만, 실제 통계 결과는 일자리 안정자금 효과 등에 힘입어 전망치보다 훨씬 적었다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전망치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해 이 박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3가지 측면에서 비판했다.
우선 "이번 분석은 엄밀히 따지면 한국을 분석한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과 헝가리의 최저임금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가져다 한국의 사례를 '짐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저임금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영역이 좁긴 하지만, 그 와중에 동의하는 것은 최저임금 효과가 노동시장 사정이나 구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고용탄력성이 country-specific(국가별로 다르다)는 점"이라며 "남의 나라의 추정치를 가져다 분석해볼 수는 있지만, 그걸 근거로 자기 나라의 최저임금 효과를 예상하고 공개적으로 대서특필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비판했다.
둘째로 이 박사는 KDI 보고서가 내놓은 추정치가 편의적으로 계산됐다고 비판했다.
이 박사는 "미국의 추정치 -0.015는 그마나 옛날 것(대부분 1970-1980년대)이고, KDI 논문에서도 인정했듯이 그 이후 추정치는 0에 가깝다. 즉 전체적인 고용감소 효과는 없다"면서 "그런데도 굳이 이 추정치를 사용하는 것은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를 전제하고 분석한다는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미국 사례는 복수 출처에서 나온 '평균적 추정치'를 사용했지만, 헝가리는 아예 단 하나의 연구만 인용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 박사는 "이 연구의 추정치가 KDI의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에 유일한 실증적 근거가 됐다"며 "최저임금 속도가 빨리 올랐다는 이유로 헝가리를 살폈지만, 사실상 최저임금의 상대수준이 비슷한 영국의 탄력성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고용 탄력성은 0으로 최저임금의 고용감소 효과가 생겨나지 않았는데도 이를 애써 외면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 국장은 또 해외 사례를 비교하면서도 정작 한국의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따로 계산해 사용하지 않은 점을 거론했다.
이 박사는 "(한국은) 부분별(서비스 산업), 연령별 차이(청년고용 감소 효과)는 있지만, 총계 차원에서 고용탄력성이 0에 가깝다"며 "올해초 유럽연합에서 헝가리를 포함해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분석했는데, 고용탄력성은 0에 가까운 마이너스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KDI 보고서의 말미에 내년·내후년 고용감소 전망과 함께 언급된 프랑스 사례에 대해서도 "정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 박사는 "2000년대의 최저임금 인상은 프랑스가 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불가피하게 시간당 임금을 조정하면서 생긴 일"이라며 ""급작스레 최저임금을 올려서 생긴 부작용 탓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formula(공식)에 입각해서 반자동적으로 조정된다"며 "한국의 사례와 다르다"고 평가했다.
이어 "부정확하고 편의적인, 그것도 외국에서 '수입된' 추정치를 기초로 KDI는 한국의 최저임금에 대해 논평했고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으로 결론냈다"며 "외국 정책 사례도 부적절하게 사용됐다"고 결론내렸다.
청와대는 이번 KDI 보고서에 대해 "특별히 할 얘기는 없다"며 공식 언급을 자제했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5일 "오늘 오전 나온 CBS노컷뉴스의 기사를 참조해달라는 말씀으로 입장을 대신한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보고서를 작성한 KDI 최경수 선임연구위원은 CBS와의 전화 통화에서 "향후 최저임금 인상률을 15% 수준으로 유지하면 고용 충격이 우려되지만, 정부가 이에 대비하면 고용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를 토대로 해당 기사는 <올해부터 도입한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등을 병행하면 '2020년 1만원 인상' 공약을 이행하더라도 고용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거란 결론인 만큼, 일각에서 펴온 '속도조절론'도 설득력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고, 청와대는 이를 사실상의 '공식 입장'으로 내세운 셈이다.
2018-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