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우벅~ 안녕하세요? 이재준 기자입니다. 방금 자장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들른 기상청 홈페이지는 서울 현재 기온 -5.7도를 알리고 있군요. 예전에야 비할 바 아니지만, 온난화된 지구를 감안하면 귀밑머리가 쫑긋 설 만큼 추운 대낮 날씨입니다.
회원 여러분은 이렇게 날씨가 추울 땐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호빵? 벙어리장갑? 아니면 조개탄 난롯불에 까맣게 그을리던 양철 도시락? 참 이상한 건 무언가 추워지고서야 지난 추억의 소품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깜찍이램프처럼 하나둘씩 켜진다는 사실입니다.(날씨이던 마음이던 말이죠.)
오늘은 먼저 따뜻한 남국의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한 통의 메일로 몸을 녹여 보시죠.
◆아프리카에서 날아든 한 통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이메일클럽 회원 송방섭입니다. 이름만 듣고서는 남자로 아시겠지만 두 아이의 엄마랍니다.
오늘 쓰신 글을 읽으면서 저는 무엇이 행복일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은 우리나라의 60~70년대와 같은 상황으로 전기도 없는 집에서 생활들을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관두고라도 텔레비젼도 없는 형편인 아이들이지만 너무도 순수하고 조그만 일에도 감격해 하면서 기뻐할 줄 아는, 정말 자연스러운 표현을 할 줄 아는 이곳의 아이들과 문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아이들을 비교해 볼 때 과연 누가 더 행복한 아이들일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문명의 해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참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좀더 좋은 교육 혜택을 주려고 저희가 운영하는 선교원(Day Care Centre)과 청소년모임에서는 여러 가지 문화 해택을 맛보게 하고 있지요.
그러나 문화 혜택을 받고 있을 때보다 부시나무와 가시풀이 우거진 들판에서 염소나 동키를 몰고 다니거나, 헌 타이어를 굴리며 놀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아홉 살 어린이들이 어린이답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자꾸 우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또 왜일까요. 저 역시 부시맨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요? 한국을 떠나 산 지도 9년이 넘다보니 전혀 감각이 없나봐요. 부탁드릴 것은 조금이나마 감각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어린이들의 소식 전해주세요. 그리고 혹시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어린이에 대해 알고 싶은 것 있으면 최대한 알려드리겠습니다. bye.」
◆정보화에 따른 교육의 빈부 격차(Electronic & Educational divide)
지난 달 15일자 에듀클럽에 요즘 어린이들의 인터넷 활약상을 다룬 ‘인터넷 눈높이’란 글이 나간 직후, 제 메일박스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피드백이 날아들었습니다. “아이들 수준에 놀랐다”는 반응과 더불어 대부분의 회원님들은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즉 정보화에 따른 빈부 격차의 심화 문제를 걱정해 주셨습니다.
소개한 송방섭 회원님의 편지글은 다소 글로벌한 시각을 담고 있지만, 도시와 농어촌 또는 강남과 강북의 문제까지 미시적으로 걱정해 주신 분들도 적지 않았죠.
오늘 언급할 내용은 흔히 ‘디지털 디바이드’라고 부르는 정보 격차의 문제입니다. 에듀클럽인만큼 정보화 부문과 교육 분야를 합쳐 ‘E-디바이드’(Electronic & Educational divide)라 불러봐도 될런지요?
아마 ‘격차’란 단어만큼 사람을 민감하게 만드는 말도 없을 겁니다. 100원에 룰루랄라 하던 사람도 200원 가진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면 으르렁대게 마련이니까요.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의 어기준 소장은 “빈부 격차에 따라 컴퓨터와 인터넷 문화에 대한 접근도에 큰 차이를 보인다”면서 “이 부분에서의 기회 격차는 경제적 생산이나 교육 수혜면에서의 격차와 직결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보화가 빈부 격차를 심화하는가’와 ‘빈부 격차가 정보 접근 기회를 벌려 놓는가’의 문제는 닭과 달걀의 문제란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핵심은 ‘모두 벌어지고 있다’는 거죠. 이에 따라 ‘벌어진 틈새를 어떻게 꿰맬 것인가’의 문제 역시 당연한 귀결일테구요. 특히 E-디바이드 해소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정보화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
그렇다면 우선 이런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 ‘정보화사회’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듯 합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근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모델이라 해서 ‘정보화 사회’를 ‘포스트 모더니즘’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뜨거운 감자는 이 지점에서 등장하죠. 영어의 접두사인 post가 ‘이후의, 뒤를 잇는’이란 의미와 ‘벗어난, 탈(脫)’의 뜻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경우엔 기존 자본주의가 보여준 ‘빈부 격차’나 ‘자유 경쟁’과 같은 속성들을 정보화 사회 역시 태생적으로 내포한다고 여기는 반면, 후자는 정보화사회가 가져올 ‘해방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회원 여러분은 어떤 의견이신지요?
‘정보화가 빈부 격차를 심화한다’는 의견엔 대체로 동의하실 줄 압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정보화가 교육 격차를 심화한다’는 명제엔 찬성하지 않습니다. 아니, 찬성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죠. 찬성하지 않아도 될 다른 가능성들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가능성들의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 편지에 말씀드릴까 합니다.)
미래에 대한 비관 일색으로 정보화 사회를 바라보기엔 ‘희망’이란 단어가 바꿔놓은 인류의 역사가 눈부실 정도로 찬란하지 않은가요? 만약 미래의 인간상이 ‘디지털 알갱이로 뭉친 단순 유기체’로 전락한다면, 아직 꺾인 나뭇가지에도 눈물짓는 아이들의 풍부한 감성은 어디에 가서 안겨야 할까요?
2000-12-13 | 조선일보 '이메일클럽'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