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의 '무단횡단'

민주화항쟁 26주년을 맞은 광주에서 박근혜 대표가 연 첫 유세는 말 그대로 일촉즉발이었다.

당초 예정된 '민주의 종' 앞 유세는 남총련 대학생들의 시위로 무산되고, 박근혜 대표는 두번째 유세 예정 장소였던 광주우체국 앞에서 첫 마이크를 잡았다.

80~90년대 운동권에서 자주 쓰인 용어 가운데는 '택'이란 게 있다. 무식의 소치로 정확한 어원을 알지는 못하고 있으나, 대략 그날 집회시위 중 계속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전술'을 가리킨다고 보면 되겠다.

사실은 그 용어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던 시절에도 그 용어가 궁금해서 정확한 어원을 알아낸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다시 전혀 모르는 용어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운동권이 쓰던 '택'을 이제는, 운동권 앞에서 한나라당이 사용하고 있다. 시대가 많이 바뀐 건 분명한 듯했다.

한나라당 창당 이후 처음인 광주에서의 첫 거리 유세는 사실상 쫓기듯, 도망치듯, 그러면서도 팩트 자체는 역사에 남기기 위한 것인 듯, 그렇게 '날림'으로 진행됐다.

기자들의 점심 자리에서 나는 "차라리 박 대표가 경호세력 다 물리고 학생들과 대면해 대화를 했다면 오히려 '광주의 전설'로 남았을 것"이라는 괴이한 논리를 폈다.

다른 한 기자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아니냐"며 "경호세력 물리자마자 당장 머리채 잡힐 것"이라고 했다.

그래, 평소 냉소적인 나는 가끔 지나치게 낭만적인 게 탈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역사의 그날, 시민군과 계엄군이 충돌했던 구 도청앞 거목엔 원혼들의 넋을 달래려는 색색의 거대한 실타래가 묶여 너울거렸다.

한나라당은 오후 대전으로 넘어갔다. 아침 김포공항에서 한나라당 기자단과 같은 비행기를 탄 열린우리당 박영선 대변인은 대전으로 가는 KTX도 같은 차를 탔다.

박 대표는 대전 부사동 사거리에서 박성효 대전시장 후보 등과 함께 거리 유세를 벌였다.

물론 광주보다는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박 대표는 대전 유세에서 자신의 오랜 소신을 깨며, 한 사람을 콕 찍어 비난했다. 현 시장이자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염홍철 씨다.

소신을 깬다는 것. 특히 선거를 위해, 표를 얻기 위해 소신을 깬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슬픈 일이다.

대전에서의 첫 거리 유세가 끝난 뒤, 나는 박근혜 대표의 범법 행위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다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팩트가 왜 내 눈에는 보이는 것일까. 확실히 나는 좀 삐딱한 인간인 듯하다.

첫 유세가 펼쳐진 부사동 사거리는 교통량이 많은 편이었고, 유세로 사람이 몰리자 지나가던 차량 운전자들은 짜증이 많이 난 듯 경적을 심하게 울려대기도 했다.

유세를 마친 박 대표는 다음 유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당직자들에 에워싸여 차량으로 걸어갔다. 보행자신호등이 빨간불에 멈춰있고 사람들은 자꾸 박대표 근처로만 몰려들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경찰에게 "아, 좀 알아서 신호 좀 바꿔주시죠"라며 한마디씩 했지만, 경찰은 융통성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박 대표는 결국 본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호위세력에 둘러싸인 채 빨간불이 켜져있는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이날 광주와 대전을 횡단한 박 대표는 덤으로 '무단횡단'도 했다.

어쩌면 나는 박근혜 대표의 범법 행위를 현장에서 본 대한민국의 유일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2006-05-19 오전 10:43:57 | ONnOFF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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