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입자 보호 대책을 미룬 상황에서 보유세 개편을 공식화함에 따라, 다주택자들의 부담이 서민에게 전가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국은 빠르면 이달중 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를 거쳐 이르면 상반기 안에 보유세를 포함한 '부동산 과세체계 정상화 방안'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보유세뿐만이 아니라 세제개편 문제는 국민 실생활과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인 논의·합의가 중요하다"며 "재정당국과 재정특위가 같이 협의하고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서 방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평과세'와 '주거안정' 차원에서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적정화하는 한편, 다주택자 등에 대한 보유세 개편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머뭇대던 보유세 개편에 본격 착수하면서 "다소 늦었지만 다행"이란 반응과 함께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김 부총리의 말처럼 진행 방향에 따라선 서민 실생활에 직격탄이 될 수도 있어서다.
가장 큰 문제는 전국 835만 가구, 서울만 해도 전체 가구의 60%에 이르는 임차가구다. 정부가 보유세 개편이란 '시그널'을 부동산 시장에 공식적으로 던지면서, 오는 4월 양도세 중과를 앞두고 다주택자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보유세 개편의 파장이 예상보다 커질 거라고 판단될 경우엔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거나 임대업 등록을 할 수 있다. 임대주택으로 등록되면 공공 주택에 적용되는 5%의 전월세 상한제 틀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방점은 현재 임대 등록 유도에 놓인 상태다.
반면 보유세 개편에도 집값 상승에 따른 중장기적 이윤이 훨씬 크다고 판단되면 '버티기 모드'에 돌입할 개연성이 크다. 이럴 경우 각종 세금 부담은 세입자의 몫이 될 거란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김주호 간사는 "이미 높아있는 집값을 부담하지 못해 계속 세입자로 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전월세 상한제를 최소한의 보호 대책으로 깔아줘야 한다"며 "그래야 임대인들에게 오는 여러 부담들이 세입자에게 전가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들 세입자 보호 대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지만, 정부는 4차례 연기 끝에 지난달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도 결국 제외했다. 임대업 등록을 먼저 추진한 뒤 2020년 이후 '중장기 과제'로 이들 대책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당국은 2022년까지 전월세 상한제가 적용되는 주택 비율을 현재의 23%에서 45%로 높이겠다는 계획이지만, 다주택자들이 임대업 등록에 순순히 응할지도 불투명하다. 더우기 계획대로 된다 해도 나머지 55%의 세입자는 여전히 보호 울타리 바깥에 있게 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세입자의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 비율'(RIR)은 참여정부 당시만 해도 13.0% 수준이었다. 당시 가처분소득은 44만 5706원, 주거비는 3만 4602원 꼴이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가처분소득이 59만 8790원으로 오른 사이 주거비는 29만 340원으로 10배 가까이 폭증하면서, RIR도 20.8%로 치솟았다. 박근혜정부에선 가처분소득까지 줄어 RIR은 22.7%로 한층 올랐다.
김주호 간사는 "세입자 가운데는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보다 계속 세입자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더 많다"며 "보유세나 양도세 과세가 세입자에게 직접 혜택으로 가는 건 많지 않은 만큼, 보호 대책이 한층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018-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