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실도 '애틋'…텃새로 되살린 황새


황새복원연구센터 박시룡 소장

'뱁새가 황새걸음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을만큼, 황새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 친근한 조류(鳥類)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속담으로만 남은 옛말. 뱁새가 따라가볼 염두라도 낼 수 있는 황새는 이제 국내에 25마리밖에 남아있지 않다.

다행히도, 위기에 놓인 이들 25마리 황새에겐 친아버지 같은 존재가 있다.

최근 황새 새끼 3마리를 자연 번식하는 데 성공한 황새복원연구센터 박시룡(朴是龍·한국교원대학교 생물교육학과 교수) 소장이 바로 그사람.

 

 

 

 

▽명함에도 황새 사진 새겨 넣은 '황새 박사'▽


충북 청원군 강내면 다락리 산7번지. 서울로부터 2시간가량 떨어진 이곳 한국교원대 뒷산엔 대여섯 평 크기의 컨테이너 가건물 한 채가 들어서 있다.1996년 문화재청과 한국교원대가 함께 설립한 황새복원연구센터이다.

충북 청원군 한국교원대 뒷산에 자리잡은 황새복원연구센터 전경(위 사진). 컨테이너 건물 안 연구실엔 황새 감시용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아래 사진).

8년째 이곳을 맡고 있는 박시룡 소장은 "누추하다"며 기자를 맞았다.

그가 건넨 명함엔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황새 부부 한 쌍의 사진이 박혀 있다.

그의 말이 예의로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연구실은 실제 남루했다. 장정 네 명이 앉으면 숨소리가 느껴질 만큼 비좁다.

그 한켠엔 7대의 모니터가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저 녀석들이 이번에 자연 번식에 성공한 새끼들입니다. 지금은 아빠 황새가 둥지를 지키고 있군요."

박 소장이 중앙에 있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100% 부화에 성공한 건 이번이 처음"▽

모니터들은 이곳에서 키우고 있는 황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태어난 새끼 두 마리와 아빠 황새 '자연'(12년생), 어미 황새 '청출'(4년생)이 화면에 보였다.

'자연'이와 '청출'이는 지난 9일 이들 새끼 황새 두 마리를 새 식구로 맞았다. 일주일 뒤인 16일에도 한 마리가 더 알을 깨고 나와 가족이 됐다.

"16일에 나온 새끼는 먹이 경쟁에서 밀려 지금 인큐베이터에서 키우고 있다"는 박 소장은 "두 마리는 벌써 몸무게가 2kg인데, 그 녀석은 아직 440g"이라고 했다.

어미 황새 '청출'이 물어다준 미꾸라지를 새끼 황새 한 마리가 입에 물고 있다. ⓒ황새복원연구센터

하지만 나중 나온 황새 새끼의 먹성이 워낙 좋아 "일주일 뒤엔 세 마리의 몸무게가 같아질 것"이라고 박 소장은 자신했다.

'자연' '청출' 부부와 두 마리의 새끼 황새가 하루에 먹어치우는 미꾸라지는 약 3kg.

"절반 이상을 새끼들이 먹어치운다"고 박 소장은 설명했다.

연구센터에서 황새의 알을 100% 부화하는 데 성공한 건 이번이 처음.

'자연'이와 '청출'이는 지난해에도 알을 3개 낳았고, 이 중 하나만 부화에 성공했었다.

작년에 나온 황새 새끼는 '7년만에 자연 번식에 성공했다' 해서 '칠만이'란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듬직한 어른 황새가 돼 있다.

 

 

 

▽원래 텃새였지만 지금은 철새化돼▽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황새는 황해도와 충북 음성·진천, 충남 예산 지방에서 흔히 새끼를 치고 살던 텃새였다.

그러나 6·25전쟁을 겪고 1960년대 밀렵이 성행한데다, 개발로 인한 환경적 요인까지 겹쳐 1971년 이후 국내에선 자취를 감췄다. 이때문에 1968년 이미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됐다.

지난 16일 나중에 태어난 새끼 황새 한 마리를 인큐베이터에서 양육하는 모습. 사람임을 알지 못하도록 흰 천으로 온몸을 숨긴 연구원의 복장이 이채롭다. ⓒ황새복원연구센터

박 소장은 "텃새와 철새의 구분은 인간이 만든 국경에 기인한 것"이라며 "사실 새들에겐 그러한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예전처럼 황새를 국내 텃새로 복원시킴으로써 '황새들이 살만한 환경을 가꿔나가야겠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게 우리 연구의 의의"라고 그는 덧붙였다.

국내서 발견된 '텃새'로서의 마지막 황새는 1971년까지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무술마을에 살던 암수 한 쌍으로, 그해 4월 수컷이 사냥꾼의 총에 희생됐다.

시름시름 앓던 암컷은 이 마을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1983년 농약에 오염된 먹이를 먹고 쓰러졌다. 당시 '창경원 동물원'으로 급송돼 간신히 건강을 되찾았고, 이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살다가 1994년 33세(추정)의 나이로 숨졌다.

"이대로 가면 미래의 후손들에겐 우리 황새가 전설 속 존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황새 번식에 대한 연구가 절실한 시점이죠." 박 소장이 10년 가까이 황새복원연구센터에 몸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엄격한 '一夫一妻'…금실은 원앙보다 좋아▽

멸종 위기에 대한 본능 때문일까. 황새 부부의 금실은 "원앙보다 좋다"는 말이 있다.



어미황새 '청출'(왼쪽)이와 수컷 '자연' 부부. 두 새끼 황새도 1년 정도 지나면 몸집이 어른 황새들과 비슷해진다. ⓒ황새복원연구센터

'병들어 죽은 암컷의 깃 속을 들여다보니 수컷이 어디선가 물어온 산삼뿌리가 있었다', '사람이 수컷을 해치면 암컷은 단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등의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박 소장은 "황새는 일부일처제로, 잠시도 부부가 떨어져 있는 법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지켜본 황새 부부의 애정은 남달랐다. 암수가 한 시간에 한번씩 교대하며 둥지를 지킨다.

‘다리 아플 테니 이제 그만 일어서라(?)’고 암컷이 수컷의 뒷날개를 부리로 쪼아대기도 한단다.

"황새는 명관(鳴管·울대)이 없어 소리를 못 낸다"며 "대신 부리를 부딪혀 내는 '가락가락, 따다닥' 소리가 의사소통 도구"라고 박 소장은 설명했다.

 

▽암컷은 먹이, 수컷은 체온 조절 담당▽

황새 부부는 '육아' 분담도 잘 돼있다. 암컷은 주로 새끼들에게 먹이를 준다.

박 소장은 "황새들은 야생에선 들쥐도 잡아먹지만, 이곳에선 주로 미꾸라지를 준다"며 "청주에서 대주는 곳이 있는데, 대부분 중국산 미꾸라지인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황새 부부는 '육아 분담'이 잘 돼있다. 아빠 황새인 '자연'이 날갯죽지를 펴 햇볕으로부터 새끼들을 가려주고 있다.

영양 균형을 위해 가끔 병아리도 준다. 어미 황새가 병아리를 일단 삼킨 뒤, 뼈와 털을 게워낸다. 그런 다음 중간쯤 먹다가 토해내 새끼들이 먹기 좋게 만든다.

수컷의 역할은 주로 '체온 조절'이다. 날개를 펴서 햇볕을 가려주거나, 입에 가득 물을 머금은 뒤 새끼들의 머리에 뿌려주곤 한다.

황새들의 번식이 왕성한 시기는 대략 3~5월경. "이번에 나온 새끼들도 이 시기에 생긴 것"이라고 박 소장은 말했다.

암수 한 쌍은 이 시기 2~3주에 걸쳐 하루 서너 번씩 교미한다. 박 소장은 "무정란이 자주 나와 내년엔 인공 수정도 시도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4-05-30 | donga.com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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