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장자연을 '세번째' 죽였나


장자연. 1980년 1월 25일생. 1남 2녀중 셋째. 2006년 '롯데제과' CF로 데뷔후 드라마 '내사랑 못난이' 출연.

2009년 조선대학교 대학원 휴학, 드라마 '꽃보다 남자' 출연.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와 '정승필 실종사건' 출연. 그리고 그 해 3월 7일.

◆The first death & Letter

꽃다운 그녀가 생을 스스로 마감했을 때 일부 언론들은 '악플'을, 경찰도 이를 염두에 둔 듯 '우울증'을 지목했다.

하지만 그녀가 숨진 이튿날 CBS노컷뉴스는 고인의 심경이 담긴 이른바 '유서' 존재 사실을 단독보도하면서, 그 이유도 '악플'이나 이에 따른 '우울증'이 아님을 못박았다.

고인이 숨진 사흘 뒤엔 유서 내용 일부도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A4용지 12장의 맨 마지막에는 고인이 직접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에 사인까지 남겼고,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듯 지장까지 찍어놨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또 사흘이 지나, 이번엔 KBS가 장씨 매니저 사무실의 쓰레기통에서 불에 탄 채 남은 문건 사본의 일부를 찾아내 보도했다.

"어느 감독이 태국에 골프 치러 오는데 술 및 골프 접대를 요구받았다. 룸 사롱에서 술 접대를 하고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다"

"방안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리면서 협박 문자도 받았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고인의 필적과 문건의 필적은 동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다만 사본이므로 판단은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사실상 장씨의 '친필 편지'는 2년전 이미 확인된 셈이다. '첫번째 죽음'을 불러온 범인들이 윤곽을 드러낸 순간이기도 하다.

◆The second death

나중에는 장씨의 생전 육성 녹취도 MBC를 통해 공개됐다. 하지만 고인은 생물학적 사망 넉 달만에 '두번째 죽음'을 맞는다.

경찰은 그 해 4월말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와 관계된 수사 대상 20명 가운데 11명을 불기소하거나 내사종결했다.

또 7월에 장씨 소속사 전 대표인 김모씨 등을 구속한 뒤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 와중에 불기소 또는 내사종결된 이는 외려 13명으로 늘어났다.

이로써 진실을 밝히려 장씨가 선택한 '극단'은 그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공권력 발표에 의문을 품으면서 '실체적 진실'을 따로 가슴 속에 묻어두게 됐다.

고인 스스로 억울함과 절망 속에 써내려간 '친필 편지'의 존재나 진위 자체는 공권력도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Letters and The third death

그러나 최근 SBS가 대서특필해 보도한 '친필 편지'가 가짜로 판명되면서, 고인은 바야흐로 '세번째 죽음'을 맞고 있다.

기실 장씨의 심경이 담긴 친필 문건과 육성이 이미 공개됐기에, 이번에 논란이 된 문건들의 진위 여부는 '실체적 진실'과도 그닥 연관성이 없다.

그럼에도 2년간 숨죽이고 있던 공권력이 마치 승기를 잡은 듯 "이른바 '친필 편지'는 장씨의 필적과 상이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단초가 됐다.

'리스트'에 오른 직간접 당사자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긴 마찬가지일 게다.

결국 '친필 편지는 곧 가짜'라는 오도된 메타포만 대중의 뇌리에 자리잡게 됐다. 실제 '친필 편지'가 가짜 '친필 편지'에 밀려 존재감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

지금 '장자연의 수호자' 또는 '진실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침튀기는 이들은 2년전 당시, 또는 그 이후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과연 무얼 했나.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운좋게 굴러들어온 '선정성' 앞에 열광한 건 아닌가. 이 의문이 사실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당신들이 장자연을 '세 번째' 살해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네 번째 죽음'만은 없었으면 한다.


2011-03-16 오후 2:27:25 | ONnOFF에 올린 글입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