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에 대한 부동산 보유세 도입 여부와 관련, 정부와 여당이 또다시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핀셋 증세'로 여당 목소리에 힘이 실린 소득세·법인세 인상에 이어 '증세 논쟁 2라운드'로 비화될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대추구(地代追求·rent-seeking)가 기업가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빼앗고 건전한 시민의 일할 의욕을 꺾고 있다"는 것이다.
지대추구는 기존 축적된 부를 활용해 자신의 몫을 늘리는 방법을 추구할 뿐, 새로운 부를 창출하지 않는 활동을 가리키는 용어다.
추 대표는 "모든 불평등과 양극화의 원천인 고삐 풀린 지대를 그대로 두고선 새로운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보다 강력한 의지로 근본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구체적인 대안으로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면밀한 조사로 징세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 대표는 "지대개혁이 선행돼야 진정한 소득주도 성장도 가능할 것"이라며 "지대개혁을 해내야 양극화 해소와 불평등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도 했다.
집권 여당 대표의 이같은 입장은 보유세 도입에 여전히 신중한 정부 방침과는 180도 배치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유세는 취득세와 양도세 등 거래세와 성격이 다르다"며, 사실상 '시기상조'란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쳐 국지적 시장과열 현상에 대응이 어렵고, 실현된 양도차익에만 과세하는 양도세와 달리 보유 자체에 과세하므로 소득이 없는 경우 납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정책 방향을 두고 당정의 입장이 엇갈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2일 김 부총리가 증세안이 반영된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사과'는 그 혼선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당시 김 부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명목세율 인상은 현 단계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4번 이상 말했다"며 "명목세율 인상은 민감한 문제이니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해서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고해성사'를 했다.
이어 "경제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시장에 메시지를 주고 예측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김 부총리는 취임 전후로 줄곧 명목세 인상에 부정적 방침을 밝혀왔지만, '여당 실세'인 행정자치부 김부겸 장관과 추미애 대표가 잇따라 '부자 증세'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당시에도 김 부총리는 "법인세와 소득세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지만, 결국 기재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엔 당에서 제시한 부자증세안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정세은 소장은 "이전 박근혜 정부는 감세와 재정건전성만 강조했는데 관료 조직이 스스로 입장을 바꾸기 어렵다"며 "가뜩이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관료 집단을 이끄는 입장이 더해지면서 김 부총리는 증세를 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유세 도입을 놓고도 '정통 관료'인 김 부총리와 국민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당 인사들과의 '불협화음'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특히 추 대표가 소득세·법인세 인상 논란 당시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이란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데 이어, 보유세 도입을 놓고도 '초과다 보유자'란 개념을 설정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8.2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내년 4월 1일 이후로는 청약조정지역의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가 부활된다.
이때 2주택 이상은 10%, 3주택 이상은 20%의 추가세율이 적용된다. 다주택자 가운데서도 '3주택' 이상은 투기 목적의 '초과다 보유자'로 간주될 개연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2017-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