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의 보도' 꺼내든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또다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꺼내들었다. 바로 국회법 개정이다.

18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이래, 한나라당은 야당과의 엇박자가 발생할 때마다 '국회법 개정'을 공론화해왔다.

'국회 선진화'란 명분에 '의결 정족수 확보'란 실력까지 겹치면서, 야당을 압박하는 카드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란 판단이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집권 여당의 초대 원내사령탑을 지낸 홍준표 의원이 그랬고, 안상수 원내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홍 전 원내대표의 '법안 자동상정제'가 그랬고, 이번 안 원내대표의 '상임위원장 독식제'가 그렇다.

홍 전 원내대표가 '법안 자동상정제'를 공론화한 시점은 지난해 여름. 여야의 첨예한 입장 차로 개원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야당 몫'으로 여겨졌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여당이 탐내면서 논란은 불거졌다.

한나라당은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집권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당시 홍준표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그러나 야당 시절 내내 법사위원장을 차지했던 한나라당으로서도 이같은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나온 게 '법안 자동상정제'였다. 법사위원장은 야당에 주되, 사실상 법사위를 대폭 무력화해 법안 처리 지연을 막겠다는 것.

한나라당은 또 작년말과 올해초 각종 '법안 속도전'이 야당의 강력 반발에 막힐 때마다 '국회내 폭력 금지법', '질서 유지법' 등 다채로운 국회법 개정안을 들먹였다. 아예 당안에 '국회 선진화특위'도 만들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통과시킬 듯 야당을 몰아붙였던 국회법 개정안은 1년이 훌쩍 지난 올 9월에야 국회에 제출됐다. 물론 이마저도 계류에 계류, 공전에 공전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여당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야당이라는 반대쪽 날개와의 균형이 필수 요소다. 그러니 또다른 이해당사자인 야권이 반발하는 한, 여당 일방의 국회법 개정 통과는 난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야당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다수결'임을 강조한다. 숫자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국회법 개정'이란 말이 이번 18대 국회처럼 자주 등장한 경우도 없는 것 같다.

기실 '합의'를 내세우다 진척이 안 나면 결국 '숫자'로 밀어붙이기는 과거 여당이나 지금 여당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미디어법이 그랬듯 과거 사학법도 그랬다. 그리고 4대강 예산과 세종시 수정의 '불도저식 돌파'가 또 개봉박두다.

그러나 국회의 진짜 주인인 국민들에게 사실 '숫자'는 차후 문제일 뿐이다. '숫자'만으로 모든 게 가능했다면 지금의 한나라당, 지금의 정권이 못 할 일이 뭐가 있었을까.

역대 정권 또한 시늉이라도 '소수와의 합의'를 강조한 채 모든 걸 마냥 밀어붙이진 못했다. 그래도 일말이나마 국민 눈치는 살피고 있다는 반증일 터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안상수 원내대표의 '상임위원장 독식' 추진은 민의의 전당에 전혀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

이제는 아예 '169 대 87'이라는 양당 의석 비율, '숫자의 논리'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읽히기 때문이다.


2009-12-14 오후 3:40:59 | ONnOFF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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