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맘대로 인양'…조사위 앞세운 해수부의 헛발질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를 앞세워 '맘대로 인양'을 강행했지만, 빠른 수습과 온전한 선체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조사위의 3일 발표에 따르면 세월호 선체 안에 고인 해수와 펄을 제거하기 위한 천공 작업은 사실상 실패했다.

해수부는 조사위 허락 아래 이날 오전부터 현재의 세월호 선체 하부, 즉 좌현에 배수 작업을 위한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세월호의 무게를 줄이지 않으면 선체를 육상에 옮길 선체 운송장비인 모듈 트랜스포터(M/T)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획대로라면 세월호 좌현 D데크에 뚫은 총 21곳의 구멍으로 해수가 배출돼야 했다. 하지만 이날 밤 작업 기계가 고장나도록 서둘러 19개의 구멍을 뚫었지만, 예상과 달리 물 대신 굳어버린 진흙이 천천히 흘러내릴 뿐이었다.

이 때문에 예정일까지 선체 안의 펄을 다 뺄 수는 없게 되자, 해수부는 M/T를 24대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해수부는 전날 물빼기용 구멍을 뚫겠다면서 소조기 안에 육상 거치를 반드시 마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오는 8일이면 소조기가 끝나는데, 이 때를 넘기면 다음 소조기까지 보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상하이샐비지가 발주한 M/T 24대가 현장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2~3일은 걸린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소조기를 놓치고 보름을 허비해야 한다.

인양과정을 복기해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해수부는 인양에 방해된다며 유실방지망도 없이 선미 좌현의 화물칸 출입구인 램프를 절단했다. 그 전에는 '스테빌라이저'라는 날개처럼 생긴 구조물도 잘랐다.

반잠수선에 거치한 직후에도 배수 속도를 높이겠다며 구멍을 뚫었다가 예상과 달리 잔존유가 흘러나온 바람에, 갑판 위 작업 안전을 위해 중단하기도 했다.

이러한 해수부의 '선체 훼손' 결정은 모두 희생자 가족의 동의없이 이뤄졌다. 이의가 제기될 때마다 해수부는 "시간이 없다"며 반발을 물리쳤다. 이제 이 모든 '무리수'가 물거품으로 끝날 위기에 처한 셈이다.

그런데도 해수부가 이처럼 작업을 서두른 이유는 그동안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미수습자 가족에게 하루라도 빨리 유해를 수습해주기 위해, 또 대법원조차 완벽하게 가려내지는 못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지난 3년의 세월이 너무도 길다.

그런데 조사위 김창준 위원장에 따르면 육상거치시점은 선박 안전이나 선체 조사와 관계없는 그저 '상업적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화이트마린호의 하루 용선료만 3억원에 달하는데, 이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해수부가 인양을 서두른다는 얘기가 된다.

이처럼 '돈' 때문에 강행된 해수부의 '졸속 인양'을 조사위가 적절히 통제했다면, 최소한 조사위 출범 이후 육상 거치작업의 판도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조사위는 해수부가 내린 결정을 사후승인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해수부의 인양과정이 선체조사 등에 방해되지 않도록 검토해야 한다. 해수부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조사위는 지난 이틀 동안 21개 추가 천공 결정과 실패, 24개 M/T 긴급 투입 등 육상 거치작업의 주요 고비마다 해수부 대신 직접 브리핑을 자청하며 사실상 '대변인' 노릇을 해왔다.

급기야 세월호 유가족인 4.16가족협의회 장훈 진상규명분과장이 조사위의 언론브리핑 도중 "해수부가 할 내용의 브리핑을 왜 조사위가 하느냐. 해수부가 일방적으로 내놓은 인양방식과 업체 선정 등 모든 것을 인정한 전제 아래 조사위가 활동하느냐"고 항의했을 정도다.

지금 조사위가 '무용지물'로 전락한 근본 원인은 아직 인력도 예산도 없어, 독자적으로 해수부의 인양 과정을 검토할 여력이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조사위는 해수부로부터 식대와 교통비까지 지원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조사위가 출범하기 전 인양과정까지 검토하라는 요구는 너무 가혹하다"며 "저도 잘 몰랐는데 이런 일을 해보니 설립추진단을 만들면 시행령을 만들고 예산부터 (확보)해야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조사위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때도 있었다. 출범 직후 진도 팽목항을 찾아 미수습자 가족의 의견을 우선 듣겠다는 신호를 보내는가 하면, 해수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던 '객실직립방식' 거치를 일제히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세월호를 목포 신항에 거치한 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3년 동안 세월호 관련 자료를 독점한 해수부의 대규모 자료 공세에 조사위가 부지불식간에 백기를 들고 투항한 것이다.

이는 조사위가 천공 작업에 실패했다고 밝힌 3일 1차 언론브리핑에서 M/T를 더 구비하는 대신 선체에 구멍을 뚫는 결정 배경에서 잘 드러난다.

김 위원장은 "저희는 양복만 입고 데이터가 없다. (해수부가 준) 데이터가 맞으면 맞다고 해주는 것"이라며 "같은 공무원끼리는 진실을 줄 것으로 전제하고 일하므로 믿어야 한다"는 말로 근거없는 낙관론을 펼쳤다.

이어 "해수부가 조사위를 속이거나 특정 작업을 허용하도록 몰아가려는 악의는 없을 것"이라며 "이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엄포를 놨지만, 해수부의 M/T 선정 과정에 대한 조사 계획은 밝히지도 못한 '공갈포'로 그칠 모양새다.

그 사이 해수부는 조사위의 뒤에 숨어, 지금껏 계획한 인양과정을 강행해왔다. M/T 선정이나 천공, 램프 절단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조사위가 확인할 것"이라는 답변으로 손쉽게 회피했다.

게다가 앞으로 조사위의 예산 및 인력이 꾸려져도 이미 해수부가 깔아놓은 인양작업의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조사위의 반대에도 해수부 측은 '객실직립방식'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육상 거치 후 선체 정리를 맡을 코리아쌀베지 류찬열 대표는 "공감대가 형성돼 (객실) 분리로 간다면 해상 기중기선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며 번거롭게도 세월호 선체를 육상 거치 후 90도 돌릴 것을 버젓이 요구하고 있다.

해수부는 세월호 선체를 마치 현재 반잠수선 위에 거치한 것처럼 객실부는 바다로, 선체 하부는 뭍으로 향하도록 부둣가와 평행하게 거치할 계획이다. 

이는 조사위의 반대 의견에도 수상 대형 기중기선을 이용해 바다를 향한 객실부를 절단, 직립시키겠다는 포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객실직립방식에 최적화된 위치에 선체를 거치하면 조사위가 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금 결정한 인양방식이 향후 선체 조사과정의 어느 대목에서 발목을 잡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조사위가 지금이라도 해수부의 인양과정에 '고삐'를 쥐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할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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