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엄살'에…첫발조차 먼 '경제 민주화'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다".

재계의 반대 논리에 정부까지 가세하고 나섰지만, 실제로는 기업들의 '엄살'과 정부의 '재벌 비호'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상법개정안은 대략 20개로, 김종인 의원을 비롯해 야당에서 발의한 법안의 통과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소액주주와 우리사주조합이 사외이사 선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재벌 총수의 전횡을 최소한이나마 견제하자는 게 개정 취지다. 또 지주사의 주식을 1%라도 갖고 있다면 주식이 전혀 없는 계열사를 상대로도 주주 자격으로 소송할 수 있게 된다.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도록 허용하는 '집중투표제'는 1998년 이미 도입됐지만, '주총 정관에서 이를 배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실제로 21개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 가운데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은 4.9%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김성진 집행위원장은 "상법 개정은 재벌 총수로부터 자유로운 이사나 감사를 한 명 정도는 선임할 필요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며 "자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누군가는 문제제기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는 외국자본의 공격에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다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적대적M&A(인수합병)에 대한 규제는 크게 완화된 반면, 방어 수단은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도 경영방어권 도입 병행을 강조하며 사실상 '기업 편들기'에 나섰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0일 최고경영자(CEO) 조찬강연에서 "부분적으로 법안을 도입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시피 한 경영 방어권 제도도 같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 부총리는 21일에도 "개정 논의가 과도하게 기업의 경영권 문제를 (제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거듭 재계를 거들었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의 이러한 '가설'은 상법 개정 전인 지금도 얼마든지 이론상 가능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은 지금도 외국인 지분을 합치면 50%가 넘는다"며 "연합하면 이사회 장악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진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외국인 지분 가운데 10% 이상은 엘리엇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 

특히 시차임기제인 국내 이사회를 장악하려면 최소 2년 이상 정기주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상 외국자본의 연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김 교수는 "총수 전횡에 대한 견제를 경영권 위협으로 인식하는 자체가 한국식 재벌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시대에 뒤떨어진 애국주의 마케팅으로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상법개정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박근혜정부의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였지만, 2013년 8월 대기업 총수들과의 청와대 회동 이후 입장은 180도 달라졌다.

같은해 7월 황교안 장관이 이끈 법무부가 입법예고까지 했던 상법개정안이 회동 직후 흐지부지되지 않았더라면, 최순실과 미르재단 등에 쌈짓돈처럼 거액을 건넨 재벌들의 '국정농단 공조'는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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