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DJ' 시대…그가 던진 해법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엿새간의 국장을 마치고 23일 영면함에 따라, 한국 사회는 이제 진정한 의미의 '포스트 DJ' 시대로 진입하게 됐다.

DJ 두 글자는 정계 입문 55년 내내 한국 정치의 '상수'였다. DJ를 빼놓고는 현대 정치사, 정당사의 재구성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정도다.

특히 정치 지형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역사는 곧 DJ의 역사였다. DJ는 민주당이었고 민주당은 곧 DJ였다.

"어버이를 잃었다"는 민주당의 탄식처럼, 이제 민주 진영에는 '상수'가 없다. '되찾은 10년'을 이끌었던 두 걸출한 정치인이 잇따라 국민 곁을 떠났지만 '그 다음'은 보이질 않는다.

반면 민주당의 건너편에는 여전히 '상수'들이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그렇다.

보수 정당에 필적할 '상수'를 키우는 게 민주당으로서는 '포스트 DJ' 시대의 가장 큰 정치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DJ 두 글자는 또 대한민국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이었다. '인동초'(忍冬草) 세 글자에 녹아있는 평생의 개인적 고난과 역경은 수많은 국민들의, 국민들에 의한, 국민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가 목숨걸고 평생을 바친 민주주의는 2009년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거 직전까지 그는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억울하고 분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피맺힌 심정으로 말한다"면서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하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도 했다.

'포스트 DJ' 시대를 맞은 민주주의가 위기를 극복해낼 열쇠도 여기에 있다.

봉하마을의 한 비석 받침에 새겨진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란 말에 그 정답이 있다.

DJ 두 글자는 남북 화해와 세계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 최초로 분단 조국의 북측 지도자를 만나 악수를 이끌어냈고, 한민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사후에도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지닌 고위급 북측 조문단을 서울로 불러냈고, 꼬일 대로 꼬인 이명박정부의 남북 관계는 이로써 중대 변곡점을 맞고 있다.

'포스트 DJ' 시대의 남북 관계가 화해와 협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일의 길을 향해 나아갈 지, 아니면 대립과 갈등 그리하여 반목과 위기의 길로 갈 지 분깃점에 선 것이다.

DJ 두 글자는 또 국난 극복과 정보화 시대 진입의 상징이었다. '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변되는 IMF 사태 극복과 '초일류 정보화강국'의 기반을 마련한 그였다.

그러나 2009년 거미줄처럼 얽힌 지구촌에서 대한민국 경제는 여전히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여파에 휘청대고 있고, 그가 운전했던 '서민 경제'는 반대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소통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했던 정보화 역시 각종 통제와 억압에 직면했다. 또다시 기득권의 도구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중 경제'와 '대중 정보화'. '포스트 DJ' 시대에 또다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가 서거 직전 일기를 통해 부쩍 '지식'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인류의 역사는 맑스 이론 같이 경제 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라고 했다.

봉건시대는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갖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고, 자본주의 시대엔 지식과 돈을 함께 가진 부르주아가 패권을 장악했다는 것.

그러나 산업사회 성장과 더불어 교육 받은 지식인과 노동자가 합류해 정권을 장악하게 됐고, 21세기 들어선 모든 국민이 지식을 갖게됐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촛불시위'를 예를 든 그나 '조직된 힘'을 화두로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사 인식은 쌍둥이처럼 맞닿아있다.

DJ는 이제 역사 속으로 영면했지만, '포스트 DJ' 시대는 우리에게 또다시 굵직굵직한 화두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DJ는 우리에게 '포스트 DJ'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즉 '악을 이기는' 구체적인 해법도 던져놓고 갔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2009-08-23 오후 3:10:11 | ONnOFF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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