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 MB와 '아랫물' 김준규


위장전입. 현행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하는 불법 행위다.

몇천억원대 불법자금으로 콩밥 먹은 전직 대통령들에 비하면 '까짓것'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 주장하는 지난 1997~2007년 사이 '위장전입'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총리 후보자만 두 명이 '위장전입' 한방에 날아갔고, 감투 빼앗긴 장관들도 부지기수였다.

1998년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을 시작으로, DJ정부 시절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 참여정부 시절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이 줄줄이 철퇴를 맞았다.

업무수행능력은 물론 다른 청렴도에서도 탁월했던 이들이 왜 위장전입 하나에 불명예퇴진을 선택했을까. '국민 정서법'에서 상당히 높은 순위에 올라있는 '중대범죄'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다는 이 나라에서 '위장전입'은 그 근본을 파고드는 이기주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필부들도 그러할진대 고위공직자는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2007년 6월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서 '위장전입'은 더이상 도덕성의 잣대 자격을 상실했다.

그 첫번째 면죄부를 받은 이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경제 대통령' 앞에서는 어떠한 도덕적 결함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MB정부의 인사때마다 다채로운 윤리적 결함들이 제기돼왔지만, '위장전입'만큼은 더이상 큰 잣대가 되지 않고 있다. 이미 '윗물'에서 걸러진 문제이니 '아랫물'에 대고 뭐라 하는 게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일까.

부동산 투기를 위해 논밭에 위장전입한 사람들도 현 정권 들어 잠깐 떠들썩하다 넘어간 일이 허다하다. 하물며 농촌도 아닌 '강남'에 위장전입한 게 무에 그리 대수냐고 여길 법하다.

검찰총장 청문회에서 천성관 전 후보자는 '스폰서'와의 해외 여행 동행 여부는 끝까지 부인으로 일관했지만, 위장전입 여부는 단박에 시인했다. 검증 통과에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결국 다른 문제로 낙마한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준규 후보자 역시 위장전입에 대한 인식 수준은 엇비슷한 것 같다.

요트, 승마, 미스코리아 관련 의혹에는 진땀 뻘뻘 내며 해명했지만, 위장전입에 대해서만큼은 "자녀 진학을 위해 두 차례 했다"고 간단하게 시인한다.

이를 문제삼는 야당에 대한 여당의 대응도 참 '세월무상'을 느끼게 하긴 마찬가지다.

"후보자 스스로 잘못을 시인한 데다 17년전의 과거사"란다. "나무 한그루가 마음에 안든다고 숲에 불을 지르려 하는 것은 무모한 꼬투리 정치"라고도 한다(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

불과 4년전 한나라당 대변인은 어떻게 얘기했을까.

부인의 '20년전' 위장전입 사실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던 이헌재 부총리에게 당시 전여옥 대변인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20여 년 전이 '과거사'라고 한다면 이 땅의 청렴한 대다수 공무원들을 모독하는 일"이므로 "고위 공직자로서 이 부총리는 스스로 물러나야 옳다"는 것.

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건 청와대다. 천성관 후보자 낙마 이후 청와대는 검증에 또 검증을 거쳤다고 하고, 김 후보자는 혹독한 검증을 '회고'하며 눈물까지 짓기도 했다.

위장전입은 '검증에 또 검증'까지도 필요없는 아주 간단한 사안일텐데, 청와대는 '까짓것' 했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제 '국민정서법'도 바뀌었다고 판단한 것일까.

청와대 판단대로라면, 이제 '있는집 자식들'이 불법으로 '좋은 학교'를, '좋은 교육'을, 그리하여 '좋은 간판'을 독차지하는 것은 순전히 국민들의 '도덕 불감증'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됐다.


2009-08-03 오전 11:06:35 | ONnOFF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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