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최순실(60)씨가 국정 전반을 주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박근혜정부가 여론 반대에도 강행해온 각종 정책이 좌초 위기에 직면할 전망이다.
그간의 반발을 넘어 '하야'나 '탄핵'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도 없는 정책을 밀어붙일 동력도, 명분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역사 국정교과서 공개가 '뇌관'이다. 교육부는 다음달 28일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현장검토본을 인터넷에 'e북' 형태로 공개할 예정이다.
특히 선정 초기부터 '철통 보안'에 부쳐온 국정교과서 집필진 46명 명단도 공개할 방침이다. 이어 연말까지 현장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1월 최종본을 확정, 3월부터 전국 6천여곳 중고교에 배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 치 앞 정국도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최순실 게이트'가 휘몰아치면서, 국정 교과서 제작·배포가 예정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국정화 강행의 최선두에 섰던 박 대통령이 '뒷심'을 낼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박 대통령이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 아랑곳없이 국정화 강행 방침을 굳힌 데에도 최순실씨의 입김 또는 동조가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처음 국정화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한 건 취임 4개월 만인 지난 2013년 6월이다.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 시기는 최순실씨가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 회의, 업무보고 등 대통령이 해야 할 모든 연설과 업무에 개입한 것으로 파악된 시점이다. 실제로 최씨는 불과 두 달뒤 단행한 비서실장 교체 등 청와대 인사까지 하루 전 건네받기도 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최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라며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없다"고 증언했다.
최씨가 '개성공단 폐쇄'이나 '국채 발행' 같은 국가적 중대사까지 간여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국정화 강행' 역시 깊숙하게 개입했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러다보니 청와대 지시만 '영혼 없이' 따라온 교육부도 '진퇴양난'의 형국에 몰리게 됐다. 이미 공개하기로 한 마당에 물릴 수도 없고, 그대로 공개하자니 분노로 뒤덮이고 있는 민심에 '또다른 역린'이 될 수도 있어서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국정화 논란 당시부터 내부에서도 엇갈린 의견이 일부 있던 건 사실"이라며 "그래도 우리 입장에선 청와대 방침대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난감해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국정교과서 집필진들도 '유탄'을 맞게 되긴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역사학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집필진은 자칫 '최순실 지시로 역사를 쓴 역사가'로 역사에 길이길이 기록될 판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화 강행을 마친 직후인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도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된다"며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엔 "대통령의 얘기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누가 '첨삭지도'를 해왔는지 드러난 지금은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201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