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둘러싼 의혹이 형법상 처벌할 수 있는 '허위진단'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백선하 교수나 서울대병원은 "주치의 고유권한"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관습에 불과한 의사 재량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진단'이라면서도…견제 없는 '주치의 만능주의'
문제의 사망진단을 두고 대한의사협회와 서울대 특별조사위원회를 비롯한 의료계 전반에서 '잘못된 진단'으로 결론내린 지 오래. 하지만 백 교수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병사가 맞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백 교수는 "사망진단서 작성은 고 백남기 환자 진료를 맡아온 주치의에게 맡겨진 신성한 책임과 의무이자 권리"라며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외인사가 맞다"는 이윤성 특조위원장도, 이를 서울대병원 공식 입장으로 인정한 서창석 원장도 "사망진단서 변경 권한은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에게 있다"며 책임을 피해갔다.
하지만 의사의 '재량권'이란 게 법에도 없는 관습에 불과한데도, 서울대병원 전체가 주치의 뒤에 숨어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는 비판이 당장 나온다.
재량권이란 어디까지나 의료계 지침과 상식에 부합할 때 인정될 뿐, 무소불위의 '칼자루'나 '방패'가 아니란 얘기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은 "의사의 재량권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전문가주의는 심각한 패권일 뿐"이라며 "개인에게 무조건의 판단을 위임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 어떤 전문가에게도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그룹이 가진 '배타적 자격'은 자체 거버넌스의 수평·수직적 견제를 통해 '공익적'으로 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제한 권한은 없다…"지침·상식 벗어나면 허위진단"
실제로 현행 의료법 17조에는 '환자를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진단서 등을 작성한다'고 돼있을 뿐, 오류나 왜곡이 있어도 면책된다거나 수정을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의료법은 특히 66조에서 '진단서·검안서 또는 증명서를 거짓으로 작성해 내준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 면허 자격을 1년 이내에서 정지시킬 수 있다고 명시했다. 주치의가 작성한 진단서에 거짓이 있을 경우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사실을 외면한 전문가의 소신은 더 이상 진실이 될 수 없다"며 "모든 진료기록과 보험청구 내역이 일관된 반면 사망진단서만 유독 다른 것은 허위진단서로 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복지부 관계자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지금 단계에서 딱히 의료법령을 갖고 말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검찰이나 경찰이 통보해오기 전에는 복지부 자체적으로 조사할 계획도, 관련 절차도 전무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당국 입장은 물대포 직사의 '가해자' 격인 경찰에게 사망진단의 최종 해석 권한을 넘겨주는 꼴이 될 수 있어 추가 논란의 소지도 다분하다.
◈서울대병원·의사협회는 왜 '윤리위' 외면하나
따라서 "지침 위반과 오류가 있다"고 인정한 서울대병원이나 의사협회가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을 놓고 윤리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논의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정형준 국장은 "의료계에서 적정수준으로 여겨온 기준과 지침을 넘어서는 순간 과잉진료나 허위진단이 되는 것"이라며 "전문가 거버넌스는 제명 등의 징계를 통해 이를 시정하게 만들던가 퇴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역시 "백선하 교수의 재량권을 무제한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직위해제 및 대기발령 △허위진단 작성죄 고발 검토 △전공의 권모씨를 통한 사망진단서 수정 재발급을 서창석 원장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서 원장은 "허위진단서에 대한 기준 또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사망진단서는 317일간 치료한 담당주치의가 써야 한다"는 말로 이를 모두 거부했다.
형법 233조는 의사가 진단서 등 증명서를 허위 작성했을 때 3년 이하 징역이나 7년 이하의 자격정지 등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201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