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도 "탐지용"이라던 미군…지카 반입해도 '속수무책'

주한미군이 서울 한복판 용산기지에 일명 '지카 바이러스 탐지 역량'을 추가중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군측은 즉각 "지카 바이러스 샘플을 반입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지난해 탄저균을 몰래 반입해 실험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탐지 훈련용"이라고 해명한 바 있어 의문이 증폭된다. 특히 탄저균 반입을 사실상 '수수방관'했던 우리 정부는 이번 지카 바이러스 반입 여부에 대해서도 여전히 손을 놓은 상태여서, 여론 화살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논란의 단초가 된 건 미 육군 산하 에지우드 생화학센터(ECBC) 홈페이지에 지난달 15일자로 실린 'ECBC 전문가들, 군사 실험 역량 강화'(Experts Enhance Military Laboratory Capabilities)란 제하의 홍보성 글이다.


1917년 창설된 ECBC는 미국의 화생방 총괄 기구로, 지금은 주한미군과 함께 생물학전에 대비한 '주피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 몰래 탄저균과 페스트균을 반입해 용산과 오산 기지 등에서 실험하다가 지난해 연말 논란을 빚은 것도 이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논란이 된 글을 보면 "최근 넉 달간 ECBC는 주한미군 부대시설 3곳에서 실험하는 생물학적 작용제 샘플을 하루 두세 개에서 수십 개로 늘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특히 '주피터 프로그램' 책임자로 알려진 브래디 레드몬드 박사가 "용산기지에 지카 바이러스 탐지 역량을 추가하는 방안도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이미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하는 발언도 나온다.


이를 놓고 용산기지에서 지카 바이러스 실험을 추진중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주한미군측은 12일 곧바로 "ECBC 글이 (한국에서) 잘못 번역된 것"이라며 "미군은 어떠한 지카 바이러스 샘플도 대한민국에 반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ECBC에서 탐지 능력을 개량해 생물학 작용제에 대한 방어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미 육군의 노력을 설명하는 글을 게재했을 뿐이란 것이다.


우리 국방부도 주한미군측의 이러한 해명에 힘을 실었다. 문상균 대변인은 "(미군이) 현재 보유 중인 장비의 지카 바이러스 탐지 능력을 추가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걸 잘못 해석한 것"이라며 "지난해 12월 17일 이후 현재까지 주한미군으로부터 샘플 반입 정보를 통보받은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탐지 역량'(detection capability)을 강화한다는 것은 결국 바이러스 샘플 반입일 수밖에 없다는 게 생물학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 문제를 처음 보도한 jTBC는 이날 "(연구를 위해선) 양성 시료를 꼭 필요로 한다. 양성 시료라는 게 지카 바이러스의 유전자일 수도 있고, 불활성화시킨 배양액일 수도 있다"는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교실 백순영 교수의 견해를 소개했다.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도 이날 YTN에 출연해 "지카 바이러스 탐지 체제라는 게 조기경보와 조기검출, 최종 확인, 그리고 전세계 미군의 생물감시체계에 보고하는 4개의 틀로 구성된다"며 "이 체제를 확립한다는 건 지카 바이러스를 들여와야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군은 지난해 연말 탄저균과 페스트균을 몰래 반입해 실험하다가 들통이 났을 때도 '탐지용'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당시 한미 합동 실무단은 "현장 기술평가를 통해 주한미군이 '탐지·식별 훈련'(detection and identification training)을 위해 올해 탄저균과 페스트균 검사용 샘플을 반입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탐지'(detection) 역량이 샘플 반입을 통한 '훈련'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미군측은 '이번이 처음 실험한 것'이란 취지로 해명했지만, 실무단 조사 결과 지난 2009년부터 16차례나 탄저균을 반입해 실험한 건 물론, 페스트균 반입 실험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통관업무를 맡은 우리 관세청 역시 미군의 탄저균과 페스트균 반입을 알고도 현행법을 어긴 채 질병관리본부에 알리지 않았다. 이 사실마저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지난달에야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미군은 탄저균 실험으로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앞으로는 살아있는 균이든 죽어있는 균이든 샘플을 반입할 땐 한국 당국에 통보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소파(SOFA·주한미군 지위협정) 합동위원회를 열어 '주한미군이 샘플을 반입할 때 한국에 발송·수신 기관, 샘플 종류·용도·양, 운송 방법 등을 통보한다'는 권고안을 승인했다. 국방부 대변인이 언급한 지난해 12월 17일의 일이다.


따라서 "지난해 12월 17일 이후 주한미군으로부터 샘플 반입 정보를 통보받은 사례가 없다"는 국방부 해명과 "최근 넉 달간 실험 샘플을 하루 두세 개에서 수십 개로 늘렸다"는 ECBC의 입장은 180도 엇갈리는 셈이다.



180도 엇갈리는 것은 비단 한미 양측의 해명뿐이 아니다. 미군의 탄저균 반입 사실을 제대로 인지조차 못했던 우리 정부는 지카 바이러스 반입 통보 절차를 두고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실정이다. 


탄저균 사태 당시 오산기지 조사를 담당했던 질병관리본부 생물테러대응과 측은 "지카 바이러스는 생물테러와 관계가 없어, 이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고위험 병원체' 반입을 담당하는 질본 생물안전평가과 역시 "모기는 동물 아니냐"며 "농림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지카 바이러스를 인수(人獸)공통전염병으로 분류해 '일반 병원체' 신고 대상으로 관리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고위험 병원체'에 포함된 메르스 바이러스와 달리, 지카 바이러스는 농림부 기준으로 일반 병원체인 'BL-2등급'으로 분류돼있다. 


질본 관계자는 특히 "지카 바이러스는 생물학전과 전혀 상관이 없다"며 "주한미군이 들여올 일도, 연구할 일도, 살아있는 게 들어와서 문제될 일도 없다"고 단언했다.


반면 질본이 지목한 농림축산검역본부 측은 "지난 3월 심의위원회를 열어 지카 바이러스를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분류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소파에 따라 주한미군에서 인체 진단용으로 반입할 때는 무조건 질본으로 창구가 통일된다"고 반박했다.


현재 '병원체'의 반입 반출을 관리하는 정부 부처는 여러 곳이다. 생물무기 생산과 관련있는 병원체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생물무기법'에 따라, 인체 유해성이 큰 고위험 병원체 36종은 보건복지부가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가축전염병과 인수공통전염병 병원체의 연구용 반입 반출은 농림부가 맡고 있다.


설령 주한미군이 지카 바이러스를 이미 용산 기지에 반입했다 하더라도, 탄저균과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는 까맣게 모르거나, 알고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201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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