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누리과정에 '레드카드' 꺼낸 민심


여권이 '개헌 저지선'까지 거론되던 20대 총선에서 과반은커녕, 16년만의 '여소야대'에 제1당 자리까지 내주며 참패한 것은 어찌 보면 '예견된 참사'다.


정책이 실종된 선거란 평가도 많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밀어붙인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누리과정 예산 떠넘기기'는 현 정부와 여당의 일방독주에 대한 분노와 견제심리를 물밑에서 한껏 끌어올렸다. 


실제로 이들 사안을 두고 논쟁이 붙었을 때마다 민심은 끊임없이 정부와 여당에 경고의 '시그널'을 보냈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한 채 강행에 강행을 거듭해온 결과는 이번 총선 성적표로 고스란히 반영됐다. 민심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셈이다.


◈줄기찬 반대에도 더 줄기찬 '국정화 강행' 결국…


민심의 '시그널'은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방침을 확정한 지난해 10월 12일 전후부터 이미 감지됐다.


강행 직전인 같은달 2일 리얼미터 조사에서만 해도 '찬성 42.8% vs 반대 43.1%'로 팽팽하던 국정화 여론은 정부 발표 직후인 20일 '찬성 41.7% vs 반대 52.7%'로 벌어졌다. 같은달 17일과 18일 에스티아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33.7% vs 반대 57.7%'였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리얼미터 조사에서 서울은 '찬성 35.2% vs 반대 59.8%', 경기·인천은 '찬성 36.4% vs 반대 58.3%'로 20%p 넘는 격차를 보였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과 수도권의 '야당 돌풍'을 불러온 발원지가 됐다는 얘기다.


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을 감지한 정두언·김용태 등 새누리당의 수도권 의원들은 당시 정부 강행 방침에 강력한 우려를 표시하고 나서기도 했다. 여당 내부에서 "국정화는 총선 준비에 있어 악재 중의 악재"라며 "중도측이 반대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불만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정부는 일체의 좌고우면 없이 국정화 후속절차를 군사작전처럼 강행했다. 20일간의 '요식적인' 행정예고 기간을 거친 뒤 11월 3일 단숨에 국정화 고시를 확정지은 것.


당시 교육부가 '우편과 팩스'를 통해서만 접수한 국민 의견 47만 3880건 가운데 '국정화 반대'가 32만 1075건으로 68%에 육박했다. 반면 '찬성'은 32%로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한층 더 분노 게이지를 높인 민심의 '시그널'이었지만, 정부는 또다시 이를 외면했고 결국 화를 자초했다. 당시 국정화 총대를 멨던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이번 총선에서 6선 문턱을 넘지 못하고 '국회의장' 꿈을 사실상 접게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보육대란' 책임 소재 가른 표심…정부만 모르나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누리과정을 둘러싼 논란도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30~40대 '앵그리맘'이 현 정부와 여당에 반기를 드는 단초가 됐다.


"국가가 책임지겠다"던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 교육청에 전가하려는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은 갖은 논리와 해명을 갖다붙이고 이른바 '시행령 통치'로 일관했지만, 본질을 꿰뚫어본 '스마트 보터'(smart voter)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음을 총선 결과가 방증한다.


여권이 애써 외면했지만, 누리과정 떠넘기기에 대한 민심의 '시그널' 역시 올해초부터 뚜렷하게 감지되긴 마찬가지였다. 리얼미터가 지난 1월 7일 공개한 신년여론조사에 따르면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고 부족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65.2%나 됐다.


반면 "시도 교육청이 책임을 지고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의견은 23.5%에 불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대략 30~40%선인 걸 감안하면, '우리 아이' 문제엔 진보도 보수도 없음을 보여준 셈이다.


실제로 3~5세 자녀를 둔 연령대인 30대와 40대에선 각각 80.5%와 75.1%가 '중앙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총선 직전까지도 국민은 '시그널'을 보냈지만, 이를 무시한 후폭풍은 선거 이튿날인 14일부터 본격적으로 불어닥칠 전망이다.


당장 이 시각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47명의 집필진과 16명의 심의진이 내년초 일선학교 배포를 목표로 '밀실 편찬' 작업중인 국정교과서는 이번 총선 심판으로 명분과 동력을 모두 잃게 됐다.


각종 시행령 개정에 특별회계법 제정까지 추진해온 '누리과정 떠넘기기' 작업 역시 여소야대의 20대 국회 등장으로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식 민주주의에서 '과반'은 내가 갖고 있으면 '만병통치약'이지만, 상대가 갖고 있으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


◈민심이 던진 '시그널'…이제라도 '코드' 맞춰야


새누리당은 "국민들의 뜻이 얼마나 엄중한지 뼈 속 깊이 새긴 날"이라며 총선 패배를 시인했다. "민심과 표심의 구체적 내용들을 하나하나 새기겠다"고 했고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던진 투표용지에 선택의 '이유'는 물론 적혀있지 않다. 하지만 일찌감치부터 민심이 던져온 '시그널'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까닭을 알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까닭을 잘 헤아려 섬기는 것이 '정치'(正治)요, 애써 무시하면 '악치'(惡治)를 넘어 '폭치'(暴治)가 될 수 있다. 여권은 이제 2년도 남지 않은 대선에서의 만회를 위해서라도, 교과서 국정화와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초심'으로 돌아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4대강을 막아 '녹조라떼'가 생길지언정 바다로 흐르는 게 강물의 본연인 것처럼, 시행령으로 메치고 고시 강행으로 엎어쳐도 상식과 합리의 방향으로 흐르는 게 표심의 본연인 까닭이다.



201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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