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시도 교육청에만 목적 예비비를 지급하면서도, 정작 편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만 감사를 벌이기로 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정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일부 또는 전부 편성한 교육청들에게만 먼저 지급한 예비비는 1095억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도교육청들에는 3천억원의 예비비를 우선 배정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올해만도 4조 2천억원에 이르는 누리과정 비용을 감안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지만, 정부는 예비비를 지급했으니 예산을 편성하라며 온갖 압박과 생색내기에 여념이 없다.
교육부 이준식 장관은 3일에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목적예비비 3천억 원까지 고려한다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이 불가능하다'는 일부 시도교육감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머지 교육청들도 신속하게 편성 계획 의사를 밝힌다면 당초 계획대로 국고 목적예비비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압박을 거듭했다.
정부는 경북 191억원, 대구 146억원, 충남 144억원, 대전 85억원, 울산 63억원, 세종 22억원 등 6곳에 배정된 예비비를 전액 지급했다.
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일부라도 편성했거나 편성하기로 한 6곳엔 절반을 지급했다. 부산이 108억원, 경남 106억원, 전남 86억원, 인천 66억원, 충북 55억원, 제주 23억원 등이다.
하지만 예산 규모는 물론, 보육대란 우려가 가장 높은 서울과 경기 등 5곳에는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았다. 이들 교육청에 배정돼있는 예비비는 경기 614억원, 서울 496억원, 전북 145억원, 강원 129억원, 광주 79억원 등이다.
14개 시도 교육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사과 한 쪽 갖고 어린 아이들을 길들이는 것과 같이 교육감을 길들여보겠다는 정말 치졸한 방법"이라며 반발했다.
특히 "정부는 보육 대란을 막기 위해 긴급 국고지원을 해야 한다"며, 4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에 들어갔다.
대구와 경북, 울산 등 3곳의 이른바 '보수' 교육감들은 여기에서 빠졌지만, 이들의 입장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예비비는 '언발에 오줌누기'일 뿐, 정부가 누리과정 비용을 부담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이들 교육청 3곳은 정부가 차등 지급한 예비비의 40%에 이르는 400억원을 전액 지원받았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예비비 125억원 외에도 폐교 매각 대금 등으로 611억원을 조성해 조기 추경예산 편성에 반영했다"며 "학부모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전액 편성하긴 했지만, 누리과정 예산은 원칙적으로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의 경우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하다보니, 저소득층 학생 컴퓨터 학비 지원을 비롯한 60개 사업에서 1600억원가량의 예산이 삭감되기도 했다.
경북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예비비 191억원을 전액 지급받긴 했지만, 전체 누리과정 비용인 2153억원을 충당하기엔 턱없는 실정이다.
이영우 교육감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학부모 불안 해소를 위해 예산을 편성하긴 했지만 우격다짐으로 풀릴 일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으면 올해 연말 예산 편성 때도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정된 예비비의 절반을 지원받은 부산과 경남 역시 중앙정부의 막무가내식 행태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예비비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기존 내국세의 20.27%에서 25.27%로 늘려야 한다는 기본 입장엔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하지 않은 5곳은 물론, '원칙'을 지켰다며 정부 스스로 예비비를 지급한 세종과 전남까지 묶어 7개 교육청에 대해서만 '표적 감사'에 착수했다.
황찬현 감사원장은 3일 기자들과 만나 "내부 회의를 열어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감사를 개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며 "서울·경기·광주·전북·전남·강원·세종 등 교육청 7곳이 감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준식 장관은 이날 해법 마련을 위한 '범사회적 협의기구'를 구성하자는 교육감들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지원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의심케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보육대란은 외면한 채, 4월 총선과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201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