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다는 박근혜…누리과정 떠미는 '제왕의 그림자'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주지도 않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고 교육감들을 비난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아예 교육청이 비용 부담을 지도록 법까지 바꾸겠다고 공언한 걸 두고는 '제왕적 발상'이란 비판마저 나온다.


3~5세 무상보육인 누리과정은 박 대통령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0~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며 핵심 '보육' 공약으로 내세웠던 국정과제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2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누리과정은 지방 교육청의 법적 의무사항"이라며 "무조건 정부 탓을 하는 시도 교육감들이 무책임하다"고 화살을 돌렸다.


특히 "지난해 10월 이미 교육교부금 41조원을 시도 교육청에 전액 지원했다"며 "일부 교육청들이 받을 돈은 다 받고 써야 할 돈은 쓰지 않고 있는 셈"이라고 비난했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도 이날 "4조원을 이미 내려보냈다"며,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주장을 반복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초중고 의무교육 등에 투입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누리과정 시행 훨씬 이전부터 내국세의 20.27%로 고정돼있다.


올해치인 41조원 역시 내국세의 20.27%로, 누리과정 예산이 따로 반영되거나 교부율이 오른 건 아니다. "올해 교육교부금이 지난해보다 1조 8천억원 증가할 것"이란 박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이지만, 지난 2013년 수준으로 회복됐을 뿐 '여력'이 생긴 것도 아니다.


"서울시와 경기교육청 등은 누리과정 예산을 단 1원도 편성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박 대통령이야말로, 정작 자신의 핵심 공약에 '단 1원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당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만약 대통령이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거짓 보고를 받아 속고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말한 교부금 41조는 인건비와 물가 상승, 학교 신설 등을 따져보면 오히려 줄어든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의 '유일한' 누리과정 지원 예산은 지난달 여론 압박에 밀린 여야 정치권이 "17개 시도 교육청에 지원하라"며 통과시킨 목적예비비 3천억원이다. 올해만도 4조 2천억원이 넘는 누리과정 소요 예산에 비하면 10%도 안되는 규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마저도 '원칙을 지키는' 교육청 6곳에만 차등 지급할 뜻임을 밝혀, '자의적 행정' 논란을 자초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원칙'이란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 의무지출경비로 못박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이다. 불과 석 달전인 지난해 10월 국무회의에서 스스로 개정했을 뿐, 유아교육법 등 4개의 상위법에 위배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필요하면 법을 고쳐서라도 중앙정부가 용도를 지정해서 누리과정 같은 특정 용도의 교부금을 직접 투입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후속 논란은 불가피하다.


현행 교육교부금은 용도를 정하지 않는 96%의 '보통교부금'과 4%의 '특별교부금'으로 규정돼있다. 이를 뜯어고쳐 누리과정용 '목적교부금'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게 정부측 구상이다.


하지만 지역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용도를 규정하지 않도록 한 교부금의 근본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재정 교육감은 "교부금법을 고쳐 누리과정에 쓰겠다는 건 헌법상 '교육'에 쓰게 돼 있는 법을 고치겠다는 것"이라며 "대통령 말씀은 의무교육까지도 포기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결국 누리과정 갈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비단 유아와 학부모, 일선 유치원과 어린이집뿐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무책임한 공약과 떠넘기기, 제왕적 발상 앞에서 '법치주의' '삼권분립' '지방자치' 같은 민주적 가치들도 근본적 위협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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