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고 빠름'…졸속 극치 달리는 '국정교과서'


'어설프고 빠름'.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이후 4일 오전 처음 열린 국사편찬위원회의 기자회견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졸속'을 보여줬다.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 들어선 김정배 위원장이 준비한 원고를 모두 읽어내려가자마자, 진행자는 "기자 질문은 다섯 개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기자들이 "그런 방식에 협의한 바 없다"며 강하게 반발, 가뜩이나 싸늘한 분위기는 한층 냉랭해졌다.


당초 6~7명의 '학계 원로'가 배석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브리핑룸엔 이화여대 인문과학부 신형식 명예교수만이 김 위원장의 오른편에 홀로 섰다.


전날만 해도 참석하겠다고 밝혔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최몽룡 명예교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위원회 박한남 기획협력실장은 "오늘 아침에 모시러 갔는데, 교수님을 걱정하는 분들이 참석을 만류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명예교수의 '불명예'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란 게 학계 전반의 분위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정배 위원장은 "아마 제자들이 선생님을 좀더 보호해 드려야 겠다는 입장에서 '오늘만큼은 자리에 안 나가시는게 좋겠다' 이러한 얘기가 있었다"며 "최 명예교수는 집필에 참여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최 명예교수는 고고사를, 신 명예교수는 고대사를 대표 집필하게 된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다른 '대표 저자'는 누구냐는 질문에는 "두 분 외에 아직은"이라며 "섭외 공모절차가 오늘부터 들어가게 된다"고 얼버무렸다. 


정부와 위원회가 그동안 줄기차게 학계 원로 등을 상대로 물밑 작업을 벌여왔음에도 참여 의사를 밝힌 '초빙 원로'조차 두 명에 그쳤다는 얘기다.


위원회가 이날부터 9일까지 엿새간 '학계 중진'과 현직 교사를 상대로 공모 절차에 들어갔지만,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물론 다수의 타 전공자들까지 일체의 참여를 거부한 상황에서 집필진 구성이 쉽게 될 리는 만무하다. 


실무 책임자인 진재관 편사부장은 "중학교 교과서 21명, 교과서 15명 등 36명 수준으로 집필진을 꾸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사편찬위는 이날 국정교과서 개발 방향과 편찬 기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먼저 개발 방향으로△헌법정신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교과서 △집필·검토·감수 단계별 검증 강화를 통한 완성도 높은 교과서 △학생의 흥미유발 및 탐구활동을 강화하는 쉽고 재미있는 교과서를 내세웠다.


하지만 편찬 기준은 집필진을 꾸린 뒤 이달말까지 만들어 교육부 심의를 거쳐 확정하기로 했다. 이어 본격 집필에 착수, 내년 11월까지 심의·검토를 병행해 제작을 마친다는 방침이다.


결국 '참여 집필진'과 '편찬 기준'으로 관심을 모았던 이날 브리핑에서 새롭게 공개된 정보는 별로 없다. 초빙에 성공한 '원로'조차 두 명뿐이란 사실과, 엿새간의 '벼락 공모'가 시작됐다는 정보에 위안을 삼아야 할 판이다.


김정배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도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교과서를 만들겠다"며 "대한민국 청소년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역사 교과서 개발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201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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