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현행 검정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몰아붙인 논리와 근거는 우익단체인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에서 차용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단체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시작으로 전직 대통령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여 물의를 빚고 있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취임 전까지 이끌었던 곳으로, '종북·좌파 세력 척결'을 구호로 내건 단체이기도 하다.
9일 정의당 정진후 의원에 따르면,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위가 교육부로부터 받은 '검정교과서 좌편향' 자료는 지난 2011년 5월 국가정상화추진위가 연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교과서의 문제점과 대책' 토론회 발표자료를 토대로 한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발표자료의 제목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이념성향 분석'이다. 조갑제닷컴 소속 김모씨는 당시 자료에서 "올해 새로 발간된 6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엔 다수의 좌파 성향 교수 및 전교조 출신 교사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검정 한국사 교과서 6종 집필에 참여한 교사와 교수 37명을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 가입 단체에 따라 분류하면서 "집필진의 46%가 좌파"라고 주장했다. 또 '국가보안법 폐지' 언급도 좌편향으로 분류하는 주요 잣대가 됐다.
이러한 주장은 새누리당 특위 간사인 강은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았다고 밝힌 '검정 고교 역사교과서 집필진 현황 분석 결과'의 논리와도 흡사하다.
역시 이들 단체 소속이거나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 참여 여부를 주요 잣대로 제시하면서 "검정제 도입후 출간된 20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128명 가운데 64.8%인 83명이 진보좌파 성향"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일부 수치만 업데이트했을 뿐, 논리와 뼈대가 같다"며 "새누리당의 '좌편향 교과서' 주장에 주요 근거자료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당시 국가정상화추진위 토론회에서는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해 "공산당의 기만술책이었던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좋은 토지개혁인 것처럼 왜곡 서술했다"고 비난했다.
교육부가 새누리당에 제출한 자료 역시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토지를 분배한 것뿐인데 마치 북한 농민 모두가 토지를 무상분배받은 것처럼 썼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김동원 학교정책실장이 지난 2일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상세한 서술 등을 보면 마치 북한 교과서의 일부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현행 검정 교과서들을 싸잡아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부가 새누리당에 준 자료는 지난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된 바 있다. 야당 의원들이 '좌편향' 주장의 근거가 된 해당 자료를 제출하라고 황우여 부총리를 압박했지만, 정부와 여당이 합세해 적극 거부하면서다.
이에 박주선 위원장이 "국감법에 따라 군사기밀이 아닌 이상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경고했음에도, 황 부총리는 "특정 정당의 요구에 의해 제출한 자료"라며 결국 제출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신성범 간사 역시 "교육부가 제출한 보고서는 국회활동이 아닌 정당활동의 하나"라며 가세했다.
정부와 여당이 이처럼 해당 자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국회 제출을 원천 봉쇄한 것은 우익단체 자료를 토대로 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파장이 커질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매카시즘'의 대명사로 부상한 고영주 위원장과의 연관성이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 한 것으로 관측된다. 당시 국가정상화추진위 토론회에서 고 위원장은 주제 발표와 인사말을 했다.
새누리당과 교육부는 11일 오후에도 당정협의를 열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201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