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지만, '개똥쑥'은 중국의 학자에게 노벨의학상을 안겼다. 지구촌 말라리아 퇴치에 공헌했다는 이유에서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가 5일(현지시각) 발표한 올해 노벨의학상 수상자는 기생충 연구자 3명. 아일랜드 출신인 윌리엄 캠벨(85) 미국 드루대학 교수와 일본의 오무라 사토시(80) 기타자토대학 명예교수, 그리고 중국 중의과학원의 투유유(85) 교수다.
이 가운데 투유유 교수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약초인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성분을 찾아내 눈길을 끈다. 인구 14억명의 중국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을 타긴 그녀가 처음이다.
투유유 교수는 1960년대부터 줄곧 중국 전통 약초 서적을 연구한 끝에 개똥쑥에서 뽑아낸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으로 말라리아 특효약인 '칭하오쑤'(靑蒿素)를 1971년 개발했다. 이를 통해 1990년대 이후 말라리아 퇴치에 크게 기여한 점이 이번 수상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투 교수는 "1600년전 고대 의학서가 영감을 줬다"며 "아르테미시닌은 현대과학과 전통의학이 결합한 성과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중국 관영 신화망은 "지난 10년간 연인원 10억명이 아르테미시닌을 투약받았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며 "생명을 건진 대부분의 환자는 어린이들"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개똥쑥은 사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약초다. 초롱꽃 목국화과의 쌍떡잎식물 한해살이 풀로 지리산 일대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 손으로 뜯어 비벼보면 개똥 냄새가 난다 해서 이름 붙었다.
지역에 따라선 향이 난다 해서 '계피쑥'으로, 북한에선 잎이 자잘하게 갈라진다 해서 '잔잎쑥'으로도 불린다. 일본과 중국, 아무르와 몽고, 시베리아와 인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분포해있다.
개똥쑥의 학명은 'Artemisia annua Linne'이다. 여기서 'Artemisia'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냥과 야생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에서 따온 말로, '부인병에 효능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에 노벨의학상을 거머쥔 투 교수의 이름 유유(呦呦)가 '사슴이 울며 들판의 풀을 뜯는다'(呦呦鹿鳴 食野之苸)'는 시경(詩經)의 구절에서 따온 점 역시 공교롭게도 아르테미스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개똥쑥은 위벽 보호 기능과 간 해독 기능, 또 풍부한 섬유질로 변비와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고 생리통 치료에도 효능이 있어 한방에서 널리 쓰여왔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특히 뛰어난 항암 효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입증되면서 최근 몇년새 개똥쑥이 부쩍 주목을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팀은 지난 2012년 '암저널'에 실은 논문을 통해 "개똥쑥이 암세포를 죽이는 능력은 기존 약품보다 1200배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개똥쑥에서 뽑아낸 아르테미시닌이 암을 선택적으로 죽이는 데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다는 연구였다.
개똥쑥에 함유된 플라보노이드 성분 역시 면역 조절이나 피로 회복 등에 큰 효과를 갖고 있어,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약재로 지정돼있다.
국내에서도 학계와 의약업계 곳곳에서 개똥쑥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한창인 상태로, 전남 곡성군의 경우 지난 2010년부터 개똥쑥을 특용작물로 지정해 재배 및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중국이 본격적인 개똥쑥 연구에 착수한 건 196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 시기로,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군사적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투 교수가 몸담은 중의과학원은 암호명 '523'인 군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약초를 이용한 항말라리아제 개발에 투신하게 됐다.
중국 언론인 남방인물주간은 "신약을 개발해 북베트남의 '미제 타격'을 돕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다"고 소개했다.
이후 투 교수는 190개의 약초 표본 실험 끝에 191번째 약초인 개똥쑥에서 추출물을 발견했고, 44년만인 올해 결국 노벨상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의도야 어찌됐든 죽은 마오쩌둥도 수십년뒤 중국의 노벨의학상 수상에 '공헌'한 셈이 됐다.
한의사협회측은 "일본의 오무라 사토시 명예교수 역시 한의학연구소장 출신"이라며 "우리 나라 역시 서구에 없는 한의학을 과학화하는 데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