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접접촉'과 '에어포켓'…가설이 화 불렀다


정부가 메르스 방역에 번번이 실패한 배경으로 '가설 집착'이 손꼽힌다. 가령 메르스 바이러스는 '밀접 접촉'을 통해서만 감염되며, 바이러스의 '최장 잠복기'는 14일이라는 식의 가설이다.


당국은 사태 초반부터 세계적으로도 검증되지 않은 이 가설들을 방역 시스템의 전제로 삼아 국민에 주입시켰다.


일례로 1차 진원지였던 평택성모병원에서는 확진자와 같은 병실에 머무른 환자들만 밀접 접촉자로 규정했다. 2미터 이내 거리에 1시간 이상 같이 있던 사람만 감염 우려가 있다는 '추정'이 토대가 됐다. 감염의심군은 자연스레 최소한의 범위로 설정됐다.


하지만 이 같은 전제가 가설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후 국면에서 예외 사례가 터져나왔다. 같은 병실이 아닌, 10미터 이상 떨어진 1인실에 머물렀던 6번(71·사망)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게 지난 5월 28일. 


최초 환자가 머문 '8104호'에만 몰두했던 당국도, 병원도 대혼란에 빠졌다. 당국의 '묵묵부답' 속에 병원은 자체 판단으로 이튿날부터 곧바로 문을 닫았다. 


이후 감염자가 속출하며 평택성모병원에서 나온 확진자만 36명. 방역망 '초안'이 완벽하게 실패했음을 알리는 결과였다.


문제는 그런데도 정부가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이 전제를 수정·보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가 터진 지 열흘 만에 삼성서울병원도 대열에 합류했지만, 이곳에서도 메르스 노출자 선정은 기존 방식대로 이뤄졌다.


특히 당국이 삼성서울병원 측에 초기 접촉자 조사를 일임한 가운데, 병원 측이 가려낸 890여명의 접촉자 명단에서 잠재적 감염자들이 대거 빠지는 '구멍'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186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백 명 가까운 환자가 격리되지 않은 채 '방역망 바깥'에서 나왔다. 이른바 '비(非)격리 확진자'들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제대로 된 격리 시점을 놓친 것도 화를 키웠다. 이미 여러 차례 방역망이 뚫린 뒤에야 '부분폐쇄' 조치에 들어갔고, 확진자를 90명 가까이 낸 뒤에도 다른 강화된 조치 없이 '연장'만 하면서 의료진 줄감염을 불렀다.


'최악의 가능성'을 상정해 '최대 방역'을 펼쳐도 모자랄 판에, 증명되지도 않은 전제에 따라 '최소 방역'만 고집하다가 골든타임을 잇따라 놓쳐버린 셈이다.


보건당국은 나중에야 "전파 범위를 병실에 국한한 점, 접촉자가 다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원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전환된 점 등이 실패 원인이라고 본다"며, 가설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지난 8일 열린 국회 메르스 대책특별위원회에서 "지금도 2미터 이내 전파가 맞다고 보느냐"는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의 질의에 "일반적 상황에선 비말 전파가 원칙이되, 병원 밀폐 상황에선 에어로졸 확산 가능성이 있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이틀뒤 또다시 열린 특위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 의원은 "2미터 이내 1시간 밀접접촉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이라며 "이 집착이 보건당국으로 하여금 코호트 격리를 늦어지게 하고 병원명을 비공개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당국이 원용했다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2미터 이내가 아니어도 개인보호구 착용 없이 장기간 같은 공간에 머무른 의료진이나 보호자는 격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또 "해외에선 기관삽관 과정에서도 에어로졸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주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동 대응 실패로부터 비롯된 손실은 인명피해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막대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특히 서비스업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서울 지역 식당과 숙박업체 등의 매출은 60% 이상 감소했고, 메르스 발생 또는 경유 의료기관의 손실도 막심하다. 평택성모병원 한 곳의 피해 규모만 50억원에 이른다.


국가 재난 상황에서는 조건을 따지지 말고 최악을 가정해 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사실 이런 지적은 일년전 세월호 참사 때도 이미 여러 번 제기됐다. 304명의 목숨을 지켜내지 못하고도, 정부가 여전히 '오판'과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세월호 침몰 신고가 접수된 지난해 4월 16일 오전 8시 50분쯤. 하지만 승선 인원과 구조 인원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던 당국은 2시간여 지난 오전 11시 20분쯤에야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인명 구조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8시간 가량 지나서야 설치됐고, 선제적인 잠수사 투입도 이뤄지지 않았다. 


더디고 불투명한 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미 물속에 잠긴 선체 안에 '에어포켓'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정부는 에어포켓이 최장 72시간까지 유지될 수 있고, 이를 통해 희생자들이 생존해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뒤늦은 구조 작업의 토대로 삼기 시작했다. 


하지만 침몰 둘째 날인 17일에도 민간업체 언딘마린인더스트리(UMI)와 해군 등 당국의 잠수 투입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면서 시간은 하염없이 허비됐다.


이후 드러난 사실은 72시간 내내 선체 진입에 투입된 잠수사들은 고작 5명 안팎에 지나지 않았고, 그마저도 진입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뿐이었다.


'마지노선'으로 간주된 사흘째엔 아예 선체에 공기를 주입해 에어포켓을 좀 더 지속시키겠다는 대책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또한 가설에 의존한 비효율적 대책이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현미 의원은 "선체 도면도 확보하지 못한 사태에서 에어포켓이 있다 한들, 어디에 공기를 주입해야 생존자에게 전달될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침몰 사고 8일째에야 해경은 "선내 다인실 수색 결과 에어포켓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다. 김 의원은 "정부가 국민에게 벌인 일종의 희망고문"이라고 했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에어포켓의 존재를 전제로 한 구조활동은 무위로 돌아갔다"고 시인했다.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의존함으로써 총력 대응할 지점과 시점을 모두 놓쳐버리는 '악순환'은 메르스 사태에서도 데자뷰처럼 반복됐다. 당국의 주장만 믿고 생명과 안전을 내맡긴 국민들의 희생만 커진 셈이다.



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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