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감염' 국면까지도…삼성병원에 '방역 전권'

보건당국이 지난 5월말 '2차 메르스 유행' 이후에도 '4차 감염' 국면인 지난달 중순까지 삼성서울병원에 방역을 계속 맡겨둔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 전망이다.


◇당국 "SMC가 접촉자 파악후 자체 연락 및 격리조치 실시할 것"


보건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오전 11시 48분, 질병관리본부는 서울시에 137번(55) 환자에 대한 최초 역학조사보고서를 발송했다. 당시 보고서를 살펴보면 "SMC(삼성서울병원)에서 환자이송의 접촉자 명단 파악후 접촉자에 대한 자체 연락 및 격리조치 실시 계획→심평원에서도 접촉자에 대한 연락조치 실시계획"이라고 적혀있다.


삼성서울병원이 보건당국의 묵인하에 137번 환자의 접촉자에 대한 격리조치를 포함한 방역 대응을 주도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를 보조했다는 얘기다. 심지어 최초 역학보고서에 적혀있던 이 내용은 나중에 발표된 최종보고서에는 누락돼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앞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이송요원인 137번 환자는 보고서가 발송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12일 오후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12일은 보건당국이 '14일 최대 잠복기' 가설에 따라 2차 메르스 유행이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했던 마지노선이었다.


하지만 이날 하루에만 137번 환자를 포함해 7명의 메르스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에서 새로 발견되면서 보건당국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더구나 137번 환자는 응급실 근무자였지만 방역망에 포함되지 않은 일명 '비(非)격리 확진자'여서, 메르스 증상을 보인 2일 이후에도 열흘 넘게 평소처럼 근무했다. 이 기간 137번 환자가 직접 이송한 인원만 76명에 달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인원은 4천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데도 보건당국은 이미 메르스 방역에 실패해 당시 67명의 환자를 낳은 삼성서울병원에게 접촉자 파악 및 연락, 격리 등을 모두 맡긴 채 수수방관한 셈이다.


◇박원순 "삼성병원 전권은 부적절" 맹비난에 총리실까지 '뒷북 대응' 나서


보건당국과 삼성서울병원만의 비밀스런 '방역 민영화 카르텔'은 서울시의 개입으로 깨졌다.


서울시 메르스방역대책본부는 지난달 14일 "삼성서울병원의 비정규직 2900여 명 전원에 대해 감염 증상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강수를 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내쳐 "그동안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대응과 관련해 국가 방역망에서 사실상 열외 상태에 놓여있었다"며 보건당국과 병원을 맹비난했다. 아울러 "삼성서울병원에 전권을 맡기는 건 부적절하며, 국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며, 정부와 서울시가 주도하는 공동 특별조사단 구성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보건당국은 당시 "13일부터 민간전문가를 주축으로 즉각대응팀을 구성해 역학조사 및 방역조치 등을 총괄적으로 지휘했다"고 반박했다.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도 "병원이 독단적으로 시행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을 방역 당국과 상의하고 협의하면서 진행해왔다"고 해명했다. 돌이켜보면 송 원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삼성서울병원의 방역조치는 모두 보건당국의 묵인하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민관합동TF 즉각대응팀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접촉자 관리 및 환자 진료 등 필요한 조치를 즉시 이행하고, 이행 사항을 민관합동TF 즉각대응팀과 공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즉각대응팀의 요구에 삼성서울병원이 지난달 13일 밤 황급히 부분폐쇄 조치를 내렸지만, 실제로는 접촉자 관리 등 방역대응까지 병원 측이 전담했고 즉각대응팀은 관련 정보를 제공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개입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뒤늦게 삼성서울병원의 방역 조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5일 당시 최경환 총리대행은 총리실 산하 기구인 '방역관리 점검·조사단'을 삼성서울병원에 뒤늦게 급파, 즉각대응팀을 지원하도록 했다. 만약 방역대응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이미 보건당국이 즉각대응팀을 파견한 삼성서울병원에 굳이 총리실까지 개입해 다시 직속 조사단을 보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이 주도하고 즉각대응팀이 정보를 공유받는 방역구도에 서울시가 반기를 들자, 정부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면 이런 의문은 쉽게 풀린다.


◇난맥상의 악순환…당국은 왜 삼성병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보건당국이 삼성서울병원에 방역대응을 떠맡겼다가, 서울시의 지적으로 부랴부랴 대응에 나서는 상황은 이미 6월 초에도 '데자뷰'처럼 펼쳐졌다.


지난 5월 27일 시작된 '2차 메르스 유행' 당시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38) 환자가 감염돼 지난달 1일 확진판정을 받았지만, 보건당국은 사흘 후인 지난달 4일에야 이 사실을 발표했다.


이에 박원순 시장이 같은 날 심야기자회견을 열어 "35번 환자와 함께 심포지엄에 참석한 동료의사들의 명단을 넘기라"고 보건당국을 압박했다.


'의문의 7일'로 불리는 5월 27일~6월 4일 기간이 박 시장의 기자회견과 함께 끝나자, 갑자기 삼성서울병원에서는 하루에도 십수명씩의 메르스 확진자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삼성서울병원은 7일 기자회견에서 메르스에 노출된 의료진과 환자 등 715명을 자체 격리했다고 실토했다. 이로 인해 정부와 삼성서울병원이 정보를 은폐한 채 병원 측의 자체 방역 대응으로 사태를 진화하려다 실패, 2차 대유행을 자초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보건당국은 "접촉자 관리 등 메르스 확진자에 대한 방역대응을 병원에 일임하는 것은 역학조사 기본원칙에 맞지 않다"며, 자신들이 방역을 주도했다고 해명해왔다.


하지만 6월 중순까지도 삼성서울병원에 접촉자 관리 등 방역대응을 맡겨둔 사실이 드러난 만큼, 그 배경을 둘러싼 논란과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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