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이와 미선이의 넋이 지켜본 13일 촛불집회는 당초 예상들을 보기좋게 빗나가버렸다.
서울시청앞 광장에는 6년전 그이들을 밟고 지나간 미군 장갑차도, 강행군에 따른 피로감도 발 붙일 틈이 없는 듯했다.
누구는 대규모 '반미(反美)' 집회가 될 거라 우려했고, 누구는 '촛불 피로 증후군'으로 1만 명도 안 모일 거라 했다.
하지만 이날밤도 3만여 개의 촛불들은 지난 43일간 그래왔던 것처럼, 오직 '쇠고기 재협상'을 위해 컴컴해진 세상을 밝히며 타들어갔다.
다만 무대 오른편에 그이들을 기리는 분향소가 설치됐고 하얀 국화가 이어졌다. 시청앞 하늘에는 "효순아, 미선아, 보고싶다"라는 외침이 울려퍼졌다.
"살인미군 처벌하라" "한미 소파(SOFA) 개정하라"는 울림이 잠시 허공을 맴돌았다. 그러나 구호는 이내 "재협상을 시작하라" "이명박은 퇴진하라"로 메아리되어 왔다.
대개 광화문으로 향하기 마련이던 촛불들의 행렬은 이날 한강을 건너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에 '화염방사기'와 '가스통'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연단에 선 주최측 관계자는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여의도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마포대교는 이날 준공 38년만에 처음으로 1만여 개의 촛불을 등에 태워 여의도로 보냈다. 촛불들도 켜진 지 43일만에 가장 긴 행군을 벌인 셈이 됐다.
이날 KBS와 MBC 사옥에는 군복을 입은 고엽제전우회 5백여 명이 "PD수첩 박살내자" 등의 팻말을 들고 나타나 난입을 시도했다.
서울역과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 반대' 시위를 벌인 이들은 승합차량 앞에 LPG가스통을 묶은 채 "편파방송을 사과하라"며 진을 쳤다.
일부 차량 본네트 위에는 화염 방사기도 놓여있었다. 지난 6일 시청앞 광장을 선점했던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HID)의 '위패'는 차라리 '평화적'이다.
고엽제 전우회원들은 이날 해당 방송사측의 사과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3시간여만에 해산, 다행히 촛불 행렬과의 물리적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이들이 사라진 KBS 앞에는 대신 "최시중은 퇴진하라" "민영화는 청와대부터"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가까운 한나라당 당사는 긴급 증원된 전경들로 둘러싸인 채 '13일의 금요일 밤'을 지새웠다.
연일 수십만 명을 받아내던 시청앞 광장은 이제 '생명력'까지 생긴 듯하다. 완급 조절을 해가며 본격적인 '장기전'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주말인 14일에는 쇠고기 협상에 항의해 분신 사망한 고(故) 이병렬씨의 '민주시민장'이, 15일에는 전문가 토론회가 있은 뒤 또다시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돼있다.
주최측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정권 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20일은 이제 엿새앞으로 다가왔다.
2008-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