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회사측이 노조 간부에게 먼저 협상을 제안해놓고도, 결렬시킨 뒤 체포하려다 분신 사태까지 불러오면서 '과잉 진압'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21일부터 노조의 점거 농성이 벌어지고 있는 반도체 제조회사 KEC의 경북 구미 공장. 노조 지부장 김모(45)씨는 농성 열흘째에 접어든 30일 저녁 회사 임원진과 마주 앉았다.
사측은 이날 오후 3시쯤 김 지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가, 오후 7시로 연기하자고 알려왔다. 이에 김 지부장은 사수조 5명과 함께 점거 농성중인 1공장을 나와 고객안내실에서 사측과 면담했다.
그러나 3시간 가까운 협상에도 노사 견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이어 밤 10시쯤 김 지부장이 화장실에 가는 순간 잠복해있던 수십 명의 사복 경찰이 덮쳤다는 것이다.
이에 저항하던 사수조들은 현장에서 바로 연행됐다. 이 와중에 김 지부장은 여자 화장실로 피신했지만, 경찰이 문을 부수고 진입을 시도하자 시너를 몸에 끼얹고 분신을 감행했다.
얼굴과 오른손 등에 3도 화상을 입은 김 지부장은 경찰에 의해 구미 차병원으로 이송됐다가 대구 푸른병원으로 옮겨졌고, 31일 오전 대구를 출발해 이날 오후 서울 한강성심병원에 도착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과 사측이 김 지부장을 연행하기 위해 협상을 미끼로 삼았다"고 비난했다.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은 "사측이 교섭을 하자고 해놓고 사복경찰을 동원해 지부장을 구속하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농성중이라도 노사 교섭이 이뤄질 때는 경찰이 노조 지도부의 신분을 보장해온 게 관례인데, 이번에는 경찰이 사측과 미리 짜고 무리한 연행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기관지 '금속노동자'를 통해 "그 시각 KEC 공장 일대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경찰이 추가 배치됐고, 당시 여경들도 상당수 배치됐다"며 "이번 노사 면담이 김 지부장 체포와 농성 진압 작전 차원에서 계획된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은 지난 28일에도 농성장 인근에 헬기를 띄워 저공 비행을 하다가, 노조원 천막을 무너뜨려 임신부 등 여성 노조원 5명을 다치게 해 과잉 진압 비판을 받아왔다.
또 농성장에서 나온 조합원들에게 업무 복귀확약서를 강요, "경찰이 사측 대리인이냐"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경찰은 그러나 '과잉진압' 비판에 대해 "불법 점거농성이 장기화되면 회사 경영 악화가 뻔한 만큼 체포영장 집행은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또 협상 도중 체포를 시도한 점에 대해서도 "이날 오후 9시 30분에 최종 담판이 결렬돼 교섭에 의한 타결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당장 다음달 7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노동자대회를 앞두고 경찰의 대응 방식을 문제삼고 나올 태세여서, G20을 앞두고 긴장감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KEC노조는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타임오프제' 도입을 놓고 지난 6월부터 넉 달째 사측과 대립해왔다.
2010-10-31 오후 1: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