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부자도 제대로 안 내는 '건보'…서민만 '봉'

소득세에 건강보험료까지, 직장인들의 '유리지갑'은 각종 연말정산에 쉴 틈이 없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법으로 정해진 건보료 지원금을 7년째 제대로 내지 않은 채 정산을 거부하고 있어,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이끌어온 이규식(연세대 명예교수) 위원장은 정부의 '백지화'에 반발해 2일 사퇴하면서, 소득 중심의 부과체계 단일화 등 5가지 사항을 정부에 거듭 요구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을 법에 명기한 대로 지켜달라"며 "보험료 예상 수입의 20%에 대해 국고지원이 지켜진다면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는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전체 건보료 예상수입액의 20%를 매년 정부가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국가적 차원의 제도인만큼, 안정적 재정을 위해 국고 지원을 명시해놓은 것.


하지만 정부는 이 규정이 시행된 2007년 이후로 한 번도 20% 그대로 채운 적이 없다. 일반회계에서 14%, 나머지 6%는 담뱃세로 조성한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하기로 해놓고 실제로는 매년 16~17%가량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사후정산제'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어, 건보료 예상수입액을 일부러 낮게 책정한 뒤 국고 지원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단 관계자는 "20%를 꼭 지원해야 하는 건 아니란 게 정부 입장이었다"며 "지원금을 다 주지 않아도 하자가 없는 게 현재의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며 혼란스러워 했다.


이러다보니 지난 2007~2013년 정부가 내야 할 법정지원액은 41조 8497억원이었지만, 실제로는 33조 4035억원만 지원됐다. 미지급 누적액 8조 4462억원은 고스란히 건보 재정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건보공단의 '정부지원금 교부 현황'에 따르면, 연간 미지급액은 2007년 6739억원에서 2013년엔 1조 905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게다가 '20% 지원' 규정은 내년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것이어서, 올해 안에 복지부와 경제부처가 연장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오건호 공동 운영위원장은 "국민들은 소득세도, 건보료도 정산하는데 정부가 재정회계의 기본인 정산을 거부하는 건 상식에도 맞지 않다"며 "이규식 위원장의 지적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 태도는 건보 재정 확충과 이를 토대로 한 보장성 확대에도 장벽이 된다"며 "건보 발전을 정부 스스로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기획단에서도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을 요구하는 개편안을 채택한 것이지만, 정부의 일방적 백지화 선언으로 모든 게 물건너갈 판이 됐다.


기획단 또다른 관계자는 "사실 건의사항 정도가 아니라 기획단의 최종 결론"이라며 "복지부도 '예산 부처의 문제이지 자신들은 동의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획단 내부에서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며 "정부가 하기로 돼있는 국고 지원은 앞으로 십수년이 지나더라도 제대로 지켜야 할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예상치를 기준으로 편성한 것이어서 20%를 채우지 않아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이러다보니 결국 정부도, 고소득 '무임승차자'도 빠져나간 건보료 구멍을 서민들만 대신 힘겹게 채우고 있는 셈이 됐다.


정부가 개편 백지화 이후 비판 여론에 밀려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를 경감시켜주겠다"고 공언했지만, 고소득자를 방치한 현행 모순은 그대로여서 재정 악화만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오건호 위원장은 "의료비 지출은 고령화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동돼있다"며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국가 세금으로 책임져야 할 몫이 커지는 게 논리적으로도 맞다"고 지적했다. 


건보에 대한 국고 지원을 더욱 늘려가야 할 판에, 정부가 외려 현실을 외면한 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20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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