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소득자 반발 등을 우려해 건강보험료 개혁을 돌연 중단했지만, 불과 3주전 전자담배 규제를 밀어붙일 때는 상반된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드러났다.
서민들이 주로 찾는 전자 담배 규제는 별다른 저항 없이 세수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여겼다는 건지, 논리적 모순과 함께 의문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상황은 이렇다. 보건복지부는 3년여간 진행해온 기획단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공식 발표 예고일 하루 전인 지난 28일 갑자기 중단하면서, 그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들의 반발이 우려된다는 점, 또 하나는 시뮬레이션 자료가 오래됐다는 것이다.
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기획단 회의에서는 2011년 자료로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정책으로 결정 지으려면 좀더 자세한, 좀더 폭넓은 시뮬레이션이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자료가 나오더라도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한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 역시 "최근 자료로 하면 사실에 가깝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사전논의를 거치는 게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불과 3주전인 지난 6일 '전자담배 규제 강화 방안'을 내놓을 때만 해도 2011년과 2012년 연구자료를 주요 근거로 삼았다.
지난 2011년 이뤄진 '액상 전자담배의 유해성 연구'에 이어, 2012년 완료돼 정부 정책 연구물 공개 인터넷 사이트에도 등재된 '전자담배의 기체상 유해성 연구' 결과를 "최초 공개"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
담뱃값 인상 방침이 발표된 지난해 9월 이후 전자담배 판매량이 치솟기 시작, 일부 온라인쇼핑몰에선 지난해 12월 판매량이 일년전의 17배에 육박하던 상황이었다.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들의 불만이 날로 커져가는 가운데 정부가 부랴부랴 내놓은 방침이어서, '국민적 지지'나 '사전 논의'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복지부는 이들 자료를 근거로 "전자담배는 금연보조제가 아닌 또 다른 담배일 뿐"이라며, 청소년 판매나 허위 홍보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경고했다.
"가장 높은 니코틴 함량의 전자 담배를 150회 연속 흡입하면 치사량에 해당한다"는 정부 설명을 놓고 "밥을 150공기 연속으로 먹으면 치사량"이란 식의 패러디가 유행하기도 했다.
당시 '몇 년전 자료를 뒤늦게 발표하는 이유'에 대해선 "연구 당시에는 전자담배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며 "왜 이제서야 연구 내용을 발표하느냐고 지적한다면 할 말은 없다"는 대답만 내놨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단 규제 방안을 시행한 뒤 최신 연구는 나중에 실시하겠다"며, 이번 건보료 개편 중단 때와는 180도 다른 입장으로 정책을 강행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시 "최근 3년간 출시된 전자담배에 대한 독성 연구는 올해 상반기중 조속히 실시하겠다"며 "어떤 유독물질이나 발암물질이 있는지 분석한 뒤, 그 부분을 국민들께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한 달 사이에도 이렇게 앞뒤가 안 맞다보니 "건보료 개편 중단을 자체 판단했다"는 복지부나, "복지부 스스로 판단한 게 맞다"는 청와대 해명이 설득력있게 와닿을 리 없다.
합리적 재원 확보가 요원해진 건강보험은 당장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50년엔 100조원의 구멍이 날 전망이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현행 체계대로 유지될 경우 재정 적자는 2030년 27조 9600억원, 2040년 64조 5600억원, 2060년엔 132조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복지부는 "기획단에서 검토했던 개편 모형들도 소폭의 재정 적자가 예상됐다"며 "개편 중단으로 적자가 가속화된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2015-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