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없는 '부자 복지'였나…'건보료 회군' 파문

#1.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예비후보의 건강보험료가 논란이 됐다. 신고한 것만 수백억원대의 재력가임에도 매월 2만원 안팎의 건보료만 낸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직장가입자가 될 경우 사업소득으로만 보험료를 부과하는 산정 방식이 문제였다.


#2. 지난해 2월 생활고에 시달려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의 건보료는 매월 5만 140원이었다. 실제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에게 성이나 연령, 자동차 보유 여부 등을 토대로 측정한 평가소득이 반영되면서다. 


정부가 이러한 기형적 구조를 없애기 위해 3년여간 마련해온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안'을 공식 발표 하루 전날인 28일 돌연 폐기했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파동에 따른 '꼼수 증세' 비판, 이로 인한 지지율 추가 하락과 내년 4월 총선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도 내세워온 주요 국정과제를 손바닥 뒤집듯 백지화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후폭풍은 더욱 만만찮을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28일 "올해 안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며 사실상 '백지화' 방침을 밝혔다. 당초 29일 열릴 예정이던 기획단 최종 전체회의에서 공식 발표될 안이었다.


문 장관은 "지역가입자의 건보료가 줄어드는 데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추가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의 부담이 늘어나면 솔직히 불만이 있을 것"이라며 "연기를 하고 신중하게 검토를 하기로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지난 1977년 도입 이후 38년간 해묵은 과제로 꼽혀온 건보제도 개선은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정부가 고소득 자산가 45만명의 '눈치'를 보느라, 일반 가입자 600만 명의 혜택을 포기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정부가 마련한 개편안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공히 소득 중심으로 부과 기준을 일원화하는 게 주요 골자였다. 


급여 이외에도 금융자산 등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직장인에겐 건보료를 더 걷되, '송파 세 모녀'로 대변되는 저소득층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내린다는 대전제하에 7개의 구체적 모형까지 완성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별도 종합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상인 빌딩 소유자나 대기업 사주 등 27만명의 자산가에게 건보료를 추가 징수하는 한편, 직장인 자녀의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했던 고소득자 19만명을 새로 명단에 올릴 판이었다.


반면 건보료가 내려갈 가입자는 줄잡아 600만명으로 추산된다. 개편안에 따르면 월 5만 원이 넘던 '송파 세 모녀'의 건보료도 1만 6480원으로 대폭 낮아지게 된다.


기획단은 저소득 취약계층 지역가입자에 대해선 정액의 최저보험료를 부과하고 인상을 억제하는 방안도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었으나, 발표 전날 모두 물거품이 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소득자와 '무임승차' 피부양자들만 안도의 한숨을 쉬게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특히 연말정산과 담뱃값 인상 등으로 불거진 '편법 증세' 비판을 의식해 국민 다수에게 돌아갈 혜택을 포기함에 따라, 법인세 현행 유지 방침 등과 맞물려 '증세 없는 부자 복지'란 오명도 새로 붙게 될 전망이다.


문형표 장관은 다만 "지역가입자에 대해선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별도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군'이 청와대 방침에 따른 것이란 일부 관측에 대해선 "복지부 자체적으로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2015-01-29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