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24일로 100일째를 맞았지만, 아직 실종 상태인 건 비단 진도 앞바다에 남은 10명의 희생자뿐이 아니다.
이러다보니 존재감도 없던 안전행정부 장관 한 명만 갈아치운 모양새가 됐다. "내각 총사퇴"를 거론한 장관만 애먼 '면직 불똥'을 맞았다. 국민들이 이 정부를 보며 "책임을 다했다" 여길지 의문이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331명을 입건하고 139명을 구속했다. 일견 '양'(量)은 많아 보이나, 들여다보면 '질'(質)은 초라하다. 대부분은 세월호 선원을 비롯한 청해진해운, 한국선급, 해운조합 직원 등이다.
참사 당일 업무를 태만히 했다는 이유로 진도VTS 소속 해경들도 포함됐다지만, '몸통은 실종'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책임과 단죄가 제대로 이뤄졌다 평가하기엔 어려운 수준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권이 사실상 '궁극의 책임자'로 지목했던 유병언 씨는 진위조차 불분명한 변사체로 또다시 지목됐다. 참사의 실체적 진상 규명은 물론, 금수원 앞에는 왜 "우리가 남이가"란 현수막이 붙어야 했는지 모든 게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달라져야 했지만 결국 달라지지 않았다. 실종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실종했다. 책임과 단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난망해 보인다.
기실 이번 참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때 제대로 단죄가 이뤄졌다면 싶은 순간들이 너무도 많은 우리 근대사다. 단죄 없이 넘겨온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이제는 두꺼워 찢기도 힘든 '무책임'의 역사가 됐다. 가깝게는 녹조라떼와 큰빗이끼벌레가 소리없이 웅변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는 새롭지도 않다. 사지에 끌려간 학도군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독립 이후에도 끊긴 한강 다리 저편의 피난민들이 들었던 말과 다르지 않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광복 이전과 이후'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참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100일째가 아닌, 최소 70년째 쉼 없이 진행되고 있다. 70년을 '가만히' 있었기에, 바로바로 잊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또 잊는 데 얼마나 걸리면 적당한가. 얼마면 되겠나. 차라리 100일도 길었는지 모를 일이다.
정작 추출이 필요한 건 '유병언 DNA'가 아니라, 이리도 해묵은 '무책임과 망각의 DNA'일 수 있다.
201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