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도 '변침'에 '잠수'…의혹 자초하는 정부

 

세월호 참사 76일째인 30일부터 정부를 상대로 한 국정조사가 본격 시작된다.

하지만 정부가 주요자료 제출을 거부하는가 하면, 스스로 작성한 자료도 끊임없이 부정하거나 수정하면서 의혹과 불신만 키워가고 있다.

공공 기록에 대한 공신력 '침몰'은 물론, 실체적 진실 규명에도 난항이 예상되는 이유다. 실제로 3백명 넘는 목숨을 앗아간 초대형 재난은 여전히 '최초 사고시각'조차 베일에 쌓여있다.

정부와 수사당국이 지목한 사고 시점은 지난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그때까지는 기계적 고장도 전혀 없이 정상적으로 운항하고 있었다는 게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결론이다.

그러나 이같은 결론과는 거리가 먼 기록들이 사태 초반은 물론, 두 달이 훌쩍 지난 최근 시점까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전파되고 있는 YTN 방송 갈무리 화면.

 

사고 첫날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이 작성한 '진도해상여객선 침몰사고 상황보고'에는 사고 시점을 "08:00경 침몰중"이라고 명시했다.

정부는 이 문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돼 논란이 불거지자 "공식 문건이 아닌 초안이 방송 화면에 잡혀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사고 시각을 '8시'로 명시한 문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공개된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의 당시 상황보고서 역시 그렇다.

청해진해운을 관장하는 해운조합측은 "당일 오전 8시 55분 인천해경 상황실로부터 세월호의 위치를 문의받았다"며 "9시 10분엔 세월호 3항사와, 또 5분 뒤에는 세월호 1항사와 직접 통화했다"고 보고서에 적어놨다.

하지만 역시 논란이 불거진 뒤에는 "당시 작성자들이 모두 구속돼있어 자세한 상황은 모른다"거나 "오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이 문건에서 8시 55분에 세월호 위치를 문의해온 것으로 돼있는 인천해경측도 "목포해경 상황실로부터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게 9시 5분"이라고 밝혔다. 누군가는 당시에 시간을 잘못 기록했거나, 나중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 당일 해운조합 인천지부가 작성한 상황보고서.

 

문제는 '8시 49분'보다 훨씬 이전의 시간대를 '사고 시각'으로 여기게 할 만한 생존자 증언이나 기록들이 무수히 많다는 점이다.

당시 안산 단원고등학교 상황판에는 "8시 10분에 '배와 연락이 안된다'며 제주해경으로부터 학교에 연락이 왔다"고 적혀있었지만, 당국은 해경이 아니라 자치경찰이 전화한 거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또 전남 진도항 상황판에도 사고 시점이 '8시 20분'으로 적혀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는 변변한 해명조차 내놓지 않았다.

이밖에도 '사고시각 8시 25분'이라고 명시한 진도군청의 상황보고서는 물론, '8시 30분'으로 적시한 국립해양조사원의 항행경보 역시 의문을 자아내긴 마찬가지다.

정부 기관의 공공 기록들임에도 논란에 휩싸이자마자 "인터넷 등을 보고 베낀 것"이라는 등의 납득하기 힘든 사유와 함께 곧바로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8시'에 대한 기록들이 오류나 착오인 것으로 내몰리는 사이, 정부가 지목한 '8시 49분' 전후의 핵심 기록들은 증발하거나 편집되고 있다.

세월호와 진도VTS의 교신 내역이 편집 조작 논란에 휩싸인 데 이어, 제주VTS와의 교신 내역 역시 녹음조차 되지 않은 채 5분 분량이 증발하면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진도VTS가 참사 발생 두 달 이후 내놓은 레이더 영상마저 또다시 편집 논란에 휘말렸고, 해경 헬기가 당시 찍은 구조 영상 원본 역시 핵심 시간대만 누락돼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8시'와 '8시 50분', 진상 규명의 핵심이 될 타임라인 양대 축에 걸친 자료들이 모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원형의 가치를 훼손 당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번 국정조사의 성패 역시 얼마나 많은 '원형 자료'를 찾아내느냐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정부 당국이 보여준 행태를 볼 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당장 청와대와 총리실부터 자료 제출 일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야당측 볼멘소리가 터져나오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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