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당시 제주VTS(해상교통관제센터)가 급박한 상황 속에 느닷없이 교신 채널 변경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당시 세월호는 비상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국제 조난 주파수인 'VHF 16번' 대신, 제주VTS 교신 채널인 'VHF 12번'에 맞춰놓고 운항 중이었다.
박 변호사는 "세월호가 12번 채널을 사용한 것도 이상하지만, 왜 제주VTS가 16번도 아닌 21번으로 채널을 바꿨는지 의문"이라며 "게다가 교신 내역은 왜 녹음이 안된 건지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당시 감도 문제로 채널을 바꿨을 뿐"이라면서 "21번은 비상 채널이어서 녹음이 안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세월호가 왜 12번 채널로 맞췄는지는 우리도 이유를 모르겠다"며 "거리가 90km 넘는데 신호가 잡힌 것 자체가 대단한 요행"이라고 설명했다. 사고가 난 병풍도 해상은 진도VTS에서 28km, 제주VTS에선 72km 떨어진 곳이다.
당시 세월호는 오전 8시 55분 12번 채널을 통해 "항무 제주, 세월호 감도 있습니까?"라고 첫 교신을 했고, 이에 제주VTS가 응답하자 다시 "아 저기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 갑니다"라고 상황을 알린다.
제주VTS는 다시 8시 56분에 "귀선 어디십니까? 예. 알겠습니다. 해경에 연락하겠습니다"라고 응답했고, 세월호는 "지금 배가 많이 넘어갔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빨리 좀 와주십시오. 병풍도 옆에 있어요"라고 응답했다.
이에 제주VTS는 "예. 양지했습니다"라고 교신한 뒤 해경 122 유선 전화를 통해 사고 상황을 전파하고 긴급구조를 요청한다.
이후 제주VTS는 이해하기 힘든 교신을 시작한다. 8시 58분 세월호를 다시 호출한 뒤, 8시 59분쯤 "채널 21 부탁드립니다"라며 교신 채널을 변경한다.
대형 선박 침몰이 진행중인 긴박한 상황에서 왜 범용 비상 채널인 16번도 아닌, 21번으로의 채널 변경을 지시했는지도 의문이 증폭되는 대목이다.
◈21번 교신 내역 일부는 녹음돼…'기억'으로 녹취록 가공도
더욱 이상한 것은 21번 채널 교신 내역 전체가 녹음되지 않은 것도 아니란 점이다. 해수부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9시 5분의 마지막 교신 내역이 'VHF 21번'으로 명시돼있는데, 녹취 파일에도 생생한 음성으로 포함돼있다.
세월호가 21번 채널을 통해 "해경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자, 제주VTS는 "네, 지금 해경한테 통보했고요. 저희가 진도VTS랑 완도VTS에 통화중에 있으니 잠시만 대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응답한다.
"21번 채널은 비상 채널이어서 녹음이 되질 않는다"는 해수부 해명과 어긋나는 부분이다. 21번 채널의 다른 교신 내역만 유독 녹음이 되지 않은 셈인데, 어찌된 일인지 해수부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모든 교신 내역이 기록돼있다.
해수부측은 "녹음이 없어서 직원이 메모했던 부분을 적어놓은 것"이라며 "응급상황에서 했던 것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사고 발생 사흘뒤에 '메모'를 바탕으로 작성해 공개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09:00 VHF 21번)
제주VTS→세월호 : 세월호, 항무제주
세월호→제주VTS : 네 세월호
제주VTS→세월호 : 현재 상황이 어떻습니까?
세월호→제주VTS : 현재 선체가 좌현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컨테이너도 넘어가고.
제주VTS→세월호 : 네 인명 피해는 없습니까?
세월호→제주VTS : 현재 확인 불가 합니다. 선체가 기울어져 이동 불가합니다.
제주VTS→세월호 : 네 알겠습니다. 인명들 구명 조끼 착용하시고 퇴선할지도 모르니까 준비 좀 해 주십시오.
세월호→제주VTS : 사람들 이동이 힘듭니다.
제주VTS→세월호 : 네. 알겠습니다.
문제의 대목에는 세월호 선체 상황이나 구호 조치에 관한 교신 내역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녹음 파일 없이 재구성됐다는 점에서 녹취록을 둘러싼 진위 논란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주민 변호사는 "제주VTS는 녹음조차 없는데도 업무일지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처럼 적어놨다"며 "인근 해경에 연락했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1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