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후보자들이 잇따라 '위장 전입'이나 '논문 표절'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당시만 해도 당대의 '정승감'들을 줄줄이 집으로 돌려보냈던 '한방' 사안들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이들 잣대로 낙마한 사례는 사실상 단 한 건도 없어, 현 정권의 도덕적 기준이 지나치게 추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인사청문 대상 가운데 위장전입 논란에 휘말린 사람은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다.
임 후보자는 공무원 시절이던 지난 84년과 87년 두 차례에 걸쳐 장인인 권익현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경남 산청에 주소를 옮긴 사실이 드러났다.
야권은 이를 친인척 선거지원용 위장전입으로 보고 "공무원 중립 의무를 어긴 부적절 행위"라며 벼르고 있다.
민 후보자도 아내인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지난 85년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사원 아파트를 얻기 위해 부득이 옮겼다"고 해명했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 백희영 여성부장관 후보자는 논문 관련 의혹에 휘말렸다.
정 후보자는 지난 2000년 모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이듬해 영문으로 번역해 다른 학술지에 인용 표시없이 '중복 게재'했다.
또 지난 97년에도 자기 논문의 상당 부분을 인용해 계간지 등에 기고하는 등 '자기 표절' 의혹을 사고 있다.
백 후보자 경우 지난 2007년 제자의 석사학위 논문에 이름을 같이 올려 자신이 회장을 역임한 학회지에 게재, '논문 가로채기' 구설수에 휩싸였다.
후보자들은 모두 "크게 문제될 게 없다"며 청문회에서 해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들 사안은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낙마 직결 코스'였다.
국민의정부 시절 '위장 전입'으로 한방에 날라간 총리 후보자만도 장상, 장대환 등 두 명이다. 주양자 보건복지부장관도 이 사안 하나로 낙마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등이 가족의 위장전입 의혹으로 줄줄이 철퇴를 맞았다.
논문 표절 의혹 역시 '단칼 사안'였음은 물론이다. 참여정부 당시 김병준 교육부장관은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압박에 못 이겨 기용 13일만에 이 사안으로 중도 하차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이들 잣대들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다. 오죽하면 "위장전입과 논문표절은 MB정권의 필수과목"이란 야당의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다.
위장전입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07년 첫 '면죄부'를 받은 이후로 사실상 '무방한' 사안이 돼버렸다.
한승수 총리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현인택 통일부장관과 이만의 환경부장관, 김병국 외교안보수석까지 숱한 인사들이 번번히 위장전입 의혹을 샀지만, 도덕 잣대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스폰서' 문제로 낙마한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도, 갖은 논란에 휘말렸던 김준규 검찰총장도 위장전입만큼은 청문회에서 단박에 시인할 정도였다.
논문 관련 의혹 역시 '약발'이 사라지긴 마찬가지다. 이명박정부 출범 직후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박미석 전 청와대 수석 등이 도마에 올랐지만, 이 사안이 낙마로 이어지진 않았다.
두 잣대로 여러 '정승'들을 날렸던 한나라당의 태도 역시 180도 달라졌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11일 공개 회의에서 "모든 사람이 완전무결할 수 있느냐"며 "성인 군자가 아니라면 결점 없는 사람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이번 인사가 잘 됐고 철저한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이미 청문 결론을 냈다.
인사 때마다 '철저한 검증을 거쳤다'고 자부해온 청와대와 집권 여당.
하지만 그때마다 위장전입과 논문 관련 의혹이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걸 보면 "이들 잣대는 더 이상 갖다대지 말라"고 정권 차원에서 공식화한 모양새가 됐다.
결국 이들 도덕 잣대는 이제 실용 기치 앞에서 '잃어버린 10년'에나 존재했던 '화석'(化石)이 될 운명에 처하고 있다.
2009-09-11 오후 10: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