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음대 '담합'만 있고 '검증'은 없다

 

 

성악과 교수 공채 과정에서 특정 지원자는 물론, 이 인물을 물밑 지원한 현직 교수마저 '학위 논란'에 휘말리면서 서울대의 검증 시스템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공채 비리 파문이 처음 불거진 건 지난해 7월. 석사 학위가 아닌 미국 아카데미 수료증을 제출한 후보자 신모(40) 씨가 단독 후보로 최종에 올라가면서부터다.

모든 교수 지원자는 학사든 석·박사든 졸업장을 제출하는 것이 규정이지만, 이 후보자는 성적표만 제출한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논란이 되자 학교 측은 공채가 한참 진행된 다음에야 "후보자로부터 졸업장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1차 심사에서 3배수 후보를 선정하게 돼있는 규정조차 지키지 않음으로써 결국 '물밑 내정자 밀어주기' 의혹에 휩싸였고 공채는 철회됐다.

하지만 이로부터 불과 2개월 뒤에 2014년도 1학기 공채가 슬그머니 다시 추진됐고, 문제의 후보자는 또다시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와중에 이런 공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음대 인사위원회 소속 성악과 박모(49) 교수의 학위 위조 의혹까지 불거졌다.

박 교수는 프랑스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고 그간 공연 홍보물 등에서 본인을 소개해왔다. 그러나 해당 음악원은 지난 1월 박 교수가 다닌 적이 없으며 어떠한 학적 기록도 없다는 내용의, 학장 서명이 담긴 확인서를 보냈다.

학위 적격성을 놓고 이처럼 연거푸 의문이 제기되면서, 교수 채용시 서울대의 학위 검증 시스템 역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제대로된 학위 검증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단순 학원 수료증이 자격 심사를 통과하거나, 거짓 학위가 진짜 학위로 둔갑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믿고 한다. 설마 서울대에 지원하는데 거짓말을 하겠나"

"학위 검증?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냥 다 믿습니다. 좋은 뜻이죠. 동문들이나, 내는 사람들의 인격을 믿어요. 그래서 검증을 안 합니다".

한 음대 관계자는 조롱과 체념이 섞인 어투로 말했다. "연구 실적이나 연구 목록 등도 원본을 내지 않고 자신이 작성한 목록만 내라고 한다"는 것이다.

서울 음대의 한 은퇴 교수도 "학위를 속여서 내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서 음대에서 믿고 한다"고 했다. "설마 서울대에 지원하는데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는 것. 결국 지원자들의 양심에 맡긴다는 소리다.

각 단과대에서 올라온 최종 후보자는 임용 직전, 본부 측에서 학위 등 모든 자격에 대한 최종 확인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학위 확인서를 첨부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교무처 관계자는 "연구재단을 통해 확인서를 해 주는 절차가 있는데 이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돼 있다"면서 "전국 공통으로 해당되는 사안인데 연구재단 관할이니 그 곳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학위 검증, '시스템'이 아닌 '사람'의 문제

음악대학 신규임용교수 공개심사 규정에 따르면, 지원자는 먼저 음대 교무처에 각종 학위나 공연 기록, 연구 실적 목록 등의 서류를 제출한다.

지원서류 접수가 마감되면 학장은 인사위원회를 소집한다. 인사위원회는 기악과, 성악과 등 음대 각 과에서 한 명씩 추천된 교수와 학장, 부학장 등 총 8명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소집된 인사위원회는 지원자의 학력과 경력, 연구실적 등을 검토한다. 박사학위 소지자인지, 박사학위가 없다면 이에 상응하는 자격이나 경력이 있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것. 세 경우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 지원자는 '부적격'으로 처리된다.

그 뒤에야 비로소 해당 학과 교수들의 심사가 치러진다. 인사위원회를 통과한 지원자들을 상대로 3년 이내의 연구실적물 등 총괄연구업적을 심사하는 것. 그리고 2차 면접, 즉 공개발표(오디션)나 공개 강좌를 통해 최종 합격자가 선발된다.

다수의 내부 관계자들은 음대만의 고질적인 파벌이나 담합 문제는 바로 인사위원회의 '1차 자격심사'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은다.

전공마다 특성이 모두 다른데도, 특정 학과 교수를 뽑는 공채에 해당 학과 교수는 단 한 명만 들어간다. 이러다보니 학과 특성을 반영할만한 지원자의 학위나 경력 등을 심사하는데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위 검증 문제는 바로 이 대목에서 발생한다. 적어도 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교수들은 학위인지, 단순 학원 수료증인지, 가짜 학위인지 등에 대해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식별이 가능하다. 따라서 자격에 의심이 가면 충분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학위 검증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아무리 전문성을 갖추고 있더라도 인사위원회에서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서울대 음대 한 교수는 "이같은 심사 구조라면 인사위원회에서 올리고 싶은 후보가 있을 경우 학위에 의심이 가더라도 절대 학위 검증을 할 수도 없다"며 "인사위원회가 2차 면접 뒤 마지막에 열리는 다른 대학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폐쇄적' 심사 체계, 인사위원회 입김 커

현재의 서울대 음대 인사위원회는 마치 하나의 '섬'처럼 폐쇄적이라고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어떤 실력을 가진 사람이 지원을 했고,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고, 또 누가 자격심사를 통과했는지 등이 해당 학과 다른 교수들에게는 전혀 공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위원회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교수들은 단 한 번의 논의도 없이 인사위원회에서 한 번 걸러진 지원자들을 맞닥뜨려야하고, 이 지원자들에 한해 심사를 해야만 한다.

물론 이렇게 진행하는 데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해당 학과 교수들의 비리를 막고 '심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란 것.

그러나 이런 방식이 오히려 인사위원들의 전권 남용과 비리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정 학과 공채 자격심사에서 인사위원으로 들어간 교수 한 명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교수들은 인사위원회의 결정에 반대할 수 없게 돼있는 것도 그 권한을 더욱 비대하게 만든다. 음대 관계자는 "인사위원회 결정에 반대하면 보직에서 해임되거나 정교수 승급, 명예교수 추대 등에서 탈락한다"며 "다들 문제를 느끼지만 침묵하고 넘어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공채에서 인사위원회 결정에 반발, 공정한 심사를 주장했던 서울 음대 한 학과장은 '불성실'을 이유로 면직됐다.

◈결국 "내 제자 밀어주기"…빙상연맹보다 더 심한 음대

음대 교수들은 "서울대는 너무 '서울대'에 매몰돼 있다"며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명성을 이어가려면 교수들과 인사 시스템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석학만, 자신의 제자나 후배만 뽑으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파벌 문제로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아무개 라인'으로 불리우는 사람들만 뽑으려다 보니, 자격이 안 되더라도 억지로 쑤셔넣고, 학위를 위조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는 얘기다.

또 '자기 라인'이 아닌 사람은 교수들이 담합해 ‘0점’을 주거나 인사위원회 자격심사 단계에서 탈락시키도 한다. 이런 구조에서 학위 검증 시스템은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한 관계자는 "부정한 방법으로 들어온 교수는 그 역시 자기 사람을 앉히기 위해 부조리한 방법으로 자기 사람을 뽑으려 한다"며 "음악계 파벌이 빙상 연맹보다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을 것"이라고 자조했다.

학위 위조에 불법 과외 의혹 등을 받고 있는 박 교수 역시 실제 로개인 레슨 도중 "적당한 시기에 서울대 교수 시켜줄게"라는 말을 제자에게 공공연히 하곤 했다. 그런 박 교수가 현재 서울 음대 인사위원으로 있는 것이다.

◈"교수는 '슈퍼스타K'가 아니라 '교육 학자'를 뽑는 것"

서울 시내 한 음대 교수는 "훌륭한 가수와 교수는 다르다"며 "담합과 학력 위조 논란 등에 휩싸인 신 씨와 박 교수는 훌륭한 가수일지언정, 교수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학위 논란의 근본을 파고들어가보면 "실력보다 학위 만능주의가 낳은 병폐"라는 지적도 상존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수의 음대 교수들은 "교수 채용에 있어 학위를 따지는 건 그냥 '종이 한 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학위를 따는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수 년간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 다른 학생들과 경쟁도 하고, 특히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학자로서의 자질을 키워왔다는 걸 인정해주는 것이 바로 '학위'라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칠 준비가 돼있고, 학문을 깊이 연구할 자세가 돼있는 사람을 교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음대 한 관계자는 "단순 학원 수료증이나, 14년전 학장이 개인적으로 준 문서를 '학위'로 인정하게 되면 앞으로 그 누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 학문을 닦고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키워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를 눈감아주면 서울대는 물론 국내 음악계 전체의 질이 떨어질 것이며,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음대 학생들이나 음악가를 꿈꾸는 우리의 미래들이란 얘기다.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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