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되면서 일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졸업식 시즌이 시작됐다.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학생들의 설레는 마음과 부모들의 뿌듯함이 모인 졸업식장의 흥분된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교 앞에 행사 분위기를 돋울 꽃다발을 팔러나온 꽃집 주인들은 해마다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꽃이 예전만큼 팔리지 않아서다.
특히 생화(生花) 꽃다발을 찾는 이들은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최근 몇 년새 졸업식장에서는 '비누꽃'이나 '초콜릿 꽃다발' 같은 변종 꽃다발이 유행하고 있다.
◈ 졸업식 '꽃다발 특수'는 다 옛말…"꽃이 울어요"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한 중학교 교문 앞. 경기도 인근의 화원과 시내 꽃집에서 꽃다발 판매 '원정'을 나온 꽃집 주인들이 보도를 가득 메웠다.
박스채 포장해온 꽃다발들은 상인들이 가져온 빨래 건조대, 담벼락 등에 빼곡하게 진열됐다.
하지만 바쁘게 교문을 통과하는 학부모들 중 멈춰 서서 꽃다발을 사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눈길을 주는 사람들도 이쪽 저쪽 가격만 흥정하다가 발길을 되돌리기 일쑤였다.
6일 또 다른 고등학교 앞도 마찬가지. 서울 대치동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모(50·여) 씨도 이날 4시간여 동안 추운 날씨에 바깥에 선 채로 꽃다발을 팔았지만 수지는 영 맞지 않았다.
김 씨는 "2만 5000원짜리 꽃다발을 만들어 왔는데, 사실 2만 원에만 팔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판다"며 "팔아야 할 가격이랑 팔리는 가격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경기도 성남 꽃집에서 트럭을 몰고 나온 김모(53) 씨도 "100개 팔러 나와서 팔리는 개수는 손에 꼽는다"며 한탄했다.
졸업식은 매년 똑같이 열리는 건데 왜 꽃집 주인들은 점점 더 울상일까. 그 이유를 묻자 김 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경기가 안 좋아서"라고 말한다.
"예전 같으면 네 식구가 남동생 졸업식에 오면 엄마도 하나, 누나도 하나씩 꽃다발을 들었지만 요즘은 대표로 한 명만 들고 가지 누가 그렇게 꽃을 사느냐"는 것.
한겨울 졸업식에서는 생화가 종종 얼어버리는 문제도 발생한다. 잠실 신천동 시장에서 나온 꽃집 주인 이모(57) 씨는 "꽃잎이 얼었다가 따뜻한 실내에 들어가면 풀죽은 채소처럼 늘어져서 사실 졸업식 때 꽃 팔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일까. 올해 졸업식장 앞에서는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생화 꽃다발이 아닌 '변종' 꽃다발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종류도 가지가지다. 꽃잎을 비누로 만든 '비누꽃' 꽃다발이나, 알알이 포장된 초콜릿과 막대사탕을 꽃처럼 꽂아 만든 다발 등이 하나에 1만 원에서 1만 5천 원 사이에 팔린다.
"이건 눈으로 즐기시고, 초콜릿은 먹고, 남은 비누 꽃잎들로 손도 씻을 수 있어요". 꽃집 주인들은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비누꽃다발과 초콜릿 꽃다발을 권하며 목청껏 외쳤다.
◈ 꽃 불황에 본업 대신 '비누꽃'과 '초콜릿' 포장 나서
특히 이런 초콜릿 꽃다발은 초등학교 앞에서 더 유행이다. 졸업식이니 아무래도 분위기를 돋우려면 화사한 꽃다발이 필요한데, 일회성이 강한 생화 꽃다발을 사기는 아까우니 비누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을 것으로 된 꽃다발이 잘 팔린다는 것.
결국 꽃집 주인들은 열심히 재배한 뒤 자기만의 스타일로 디자인한 꽃다발 대신, 변종 꽃다발을 직접 만들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꽃집 주인 김 씨는 "비누꽃은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같은데서 꽃집 주인들이 도매로 사 와서 일일이 초콜릿이랑 사탕 사다가 붙이고 엮어서 만든다"고 말했다. 더이상 꽃집이 꽃만 팔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그나마 졸업식 '반짝 특수'를 기대하며 꽃을 팔러 나온 이들 사이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편의점들도 껴 있어서 꽃집 주인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실제로 졸업식 현장에서 여러 꽃 상인들 가운데 초콜릿 꽃다발을 팔고 있는 유통업계 직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꽃집 주인들이 화원을 나와 졸업식장 앞에서 꽃다발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통업체도 사탕과 초콜릿 등을 팔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편의점들 차원에서 초콜릿 꽃다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맞다"면서 "역시 자영업자인 편의점주들이 불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개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졸업식 특수'도 옛말이 될 만큼 경기 불황을 직접 체감하는 꽃집 상인들에게 이같은 '대기업의 그림자'가 달가울 리 없다.
졸업식장 앞에서 만난 한 꽃집 주인은 "우리 같은 소규모 영세상인들은 어딜 가나 설 곳이 없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2014-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