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리 토끼' 한번에 잡은 김정일


"미국은 여기자 두 명을, 북한은 모든 걸 챙겼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결과에 대해 5일 한 외교 전문가가 내린 평가다.

북한이 그간 '양자 대화' 국면 조성을 위해 미사일 발사나 2차 핵실험 등 꾸준히 '무력 시위'를 벌여온 건 주지의 사실.

그러나 꿈쩍않던 미국을 움직이게 만든 건 '대포동'도 '우라늄'도 아닌, 결국 여기자 억류 문제였다. '고립무원' 상태에서 좀처럼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망외의 소득'일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개인 자격 방북'임을 부쩍 강조하면서 "정부 차원의 어떠한 메시지 전달도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번 클린턴 방북이 그간 북한이 펼쳐온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의 성공으로 비쳐지는 걸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역으로 북한 전략이 그만큼 주효했다는 반증으로 여겨진다.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갖은 억측을 뒤로 한 채 자신의 건재함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계기도 됐다. 서방 인사와의 공개 면담을 통해 작년 8월부터 끊임없이 제기돼온 '건강 이상설'을 한번에 일축시킨 것.

특히 클린턴 면담 직후 곧바로 두 여기자를 특별 사면한 점은 그 의미가 크다.

이들이 조선민족적대죄와 무단 국경 침입죄로 '12년의 노동교화형'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그의 한마디에 곧바로 풀려날 정도로 김 위원장의 권한이 이전보다도 한층 강화됐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날 특별 사면의 근거로 밝힌 '헌법 제 103조'가 이를 반영한다. 지난 4월 개정된 헌법에서 국방위원회의 임무와 권한이 한층 막강해졌다는 첩보가 처음 사실로 확인된 것.

북한 형법 제53조는 사면 결정 권한을 헌법상 최고 주권 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 두고 있지만,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에 사면권을 부여한 정황이 이번에 구체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그동안 "조미 대결 국면"을 강조하며 벌여온 이른바 '선군정치'도 주민들의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북한 주요 매체들이 일제히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여기자들의 불법 입국과 적대행위에 깊이 사과하고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관대하게 용서해달라는 미국 정부의 간절한 요청을 정중히 전달했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도 '대내 홍보용' 측면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클린턴 방북을 '조미 대결 1라운드 판정승'의 상징적 홍보 수단으로 삼을 공산이 크다는 것.

외무장관과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도 "북한이 하나의 정치적 트로피로 생각해 클린턴을 불러들인 것"이라며 북한 의도를 분석했다.


그러나 북한의 최대 소득은 역시 '제재 국면'으로 치닫던 한반도 상황이 '대화 국면'으로 급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1994년 지미 카터에 이은 이번 전직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북한이 또다시 최대 위기 국면을 벗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북측이 비단 여기자 문제뿐 아니라 '폭넓은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고 부쩍 강조하는 것도 이를 굳히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으로서는 안정적 북미 관계 유지야말로 후계 체제 구축 및 이른바 '2012년 강성대국' 실현의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6자 회담' 틀이 유효한 만큼 미국이 즉각 양자 대화에 나서긴 힘든 데다, 그 전제조건으로 내건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비핵화'는 김 위원장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2009-08-05 오후 2: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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