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설문조사 결과, 설 연휴에 '근무'를 서고 싶다고 답한 직장인들이 예상외로 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명절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서다.
즐거워야 할 민족 대명절은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공식적인 '스트레스 제조기'가 돼버렸다.
명절이란 기간에 농축돼 터져 나오는 한국 가족문화의 면면. 아들과 며느리, 사위와 딸로서의 역할은 너무나 다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서로 다른 지점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편과 아내의 갈등도 명절이면 늘 계속될 터이다.
그래서 20대부터 40대 남녀와 함께 '대담'을 나눠봤다. 결혼 3년차에서 20년차의 기혼자들이 툭 터놓고 얘기해보자고.
지난 주말 밤, 그렇게 해서 서로 모르는 익명의 4인이 '카톡 채팅방'에 모여 2시간 수다를 떨었다. 당신의 명절은 안녕하십니까.
◈시월드·처월드…남편 생각 다르고 아내 생각 다른 그곳- 비비(30대.여): 전 사실 명절 스트레스는 크게 받은 적은 없는데...문제는 남편의 큰 집이예요. 다들 혹시 친척들 집에도 매번 인사드리러 가시나요?
- 김하루(30대.남): 전 따로 친척들 집을 찾아뵙지는 않아요.
- 보노보노(20대.여): 요즘은 친척들께 인사드리러 가는 것도 많이 줄어든 것 같죠.
- 비비(30대.여): 전 결혼 후 명절에 남편을 데리고 제 친척집에 가자고 한 적이 없는데 꼭 남편의 큰아버지께서 명절 아침마다 남편은 고모님 댁이며 인사를 다 드리고 오라고 해서...남편이 다녀오는 동안에 전 친정으로 바로 출발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거든요.
- 김하루(30대.남): 헐...빡세네요;
- 보노보노(20대.여): 비비님ㅠㅠ그럼 친정엔 언제 가시나요??? 명절엔 차도 막힐텐데,
- 비비(30대.여): 전 시댁에서 기다리고 있다가ㅜㅜ
- 김하루(30대.남): 좀 뻘쭘할 수도 있을 듯...;
- 보노보노(20대.여): ㅠㅠ시댁에 덩그러니 기다리시는 것도 고역이겠네요. 저도 시댁에 신랑 없이 있으면 뻘쭘하던데...
- 비비(30대.여): 큰아버지 고집을 아무도 못 꺾어요. 어머님도 그거 너무 못마땅해 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어머님한테 큰아버님은 또 시댁이더라고요.
- 김하루(30대.남): 전 서울에서 부산 가서 하루 집안일 하고 다음날 오전에 제사지내고 하면 다른 집 찾아뵐 여유가 없어서 바로 처갓집으로 출발하는데...
◈가장 민감한 '돈'문제, "용돈 남편-아내 양가 똑같이 하느냐" 묻자…- 비비(30대.여): 네 저는 똑같이 해요.
- letsgo1234(40대.남): 네. 그런 편입니다.
- 김하루(30대.남): 똑같이 합니다. 안 하면 맞아죽어요.
- letsgo1234(40대.남): ㅎㅎ 맞습니다. 틀리면 아내한테 혼나요ㅋ
- 보노보노(20대.여): 저도 처음엔 친정을 적게 했는데요...요즘 똑같이 합니다.
- 비비(30대.여): 무조건 똑같이 해야 서운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친정엔 엄마만 계시지만 시댁어른 두 분 것 다 해서 똑같이 드려요.
- 보노보노(20대.여): 그런데 전 가기 전부터 시어머님이 시조부모님에게 드릴 명절선물과 용돈 간섭을 너무 하셔요. 뭘 살거니? 용돈은 얼마 드릴 거니? 본인한테 드리는 건 신경 안 쓰시지만 시조부모님께 드릴 건 선물과 용돈까지 지정해주십니다. 맘에 안 드시면 '그런 거는 살 필요 없다' 하시고...고모님 아들 용돈도 챙겨주랍니다,
- 비비(30대.여): 시댁 조부모님이 남편의 친조부이신거죠?
- 김하루(30대.남): 와...보노보노님 진짜 이야기 듣는데 엄청 답답하네요.
- letsgo1234(40대.남):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까요?
- 보노보노(20대.남): 남편이 장손이라서 갖는 역할 기대도 한 몫 하는 듯해요.
◈ 남편은 "얘길 하면 편 들어줄 수 있잖아!" 아내는 "그럼 내가 여우가 되는 걸 몰라?"- 보노보노(20대.남): 저희 신랑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몰라요.
- 비비(30대.여): 저도요.
- 김하루(30대.남): 약간 아침드라마 같은...; 이럴 때 남편분이 대신 막 싸워줘야 되는데 ㅎㅎ
- 보노보노(20대.여): ㅋㅋㅋ 저희 남편은 천사 아들입니다.
- letsgo1234(40대.남): 어머님들께서 힘들게 살아오셨으면서도 며느리에게 반복되는 건 참...드라마가 이럴 때 보면 현실 반영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김하루(30대.남): 저희 집도 부산이라 약간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 계속 옆에 앉아서 같이 일하고 얘기도 같이 듣고 하니 많이 줄어들더라고요.
- 비비(30대.여): 남편이 해결사가 되어줄 순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해결하려고 했더니 여우로...ㅎㅎ
- letsgo1234(40대.남): 이런 거 보면 뭔가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 김하루(30대.남): 해결사가 되어줄 순 없지만 전쟁터에서 같이 싸워줄 동료가 될 수는 있잖아요.
- 보노보노(20대.남): 전 일주일 내내 신랑한테 폭풍 하소연합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 비비(30대.여): 작년 설인가 눈이 와서 성묘를 안 가기로 했는데 점심쯤 다 돼서 눈이 멈추니까 그때 전화가 온 거예요 성묘 가게 준비하라고. 전 이제 슬슬 친정 가야 하는데.
- 보노보노(20대.여): 어머 ㅠㅠ 너무하시다
- 비비(30대.여):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길래 성묘 가게 일어나라고 깨우면서 하소연했거든요.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점심때가 다 돼서 저러면 난 언제 친정 가라는 거냐고...그랬더니 그 길로 문 박차고 거실로 뛰어나가서 아버님한테 소리소리 질러서 저 완전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ㅜㅜ 그 뒤로 절대로 불만 얘기 안 해요.
- 김하루(30대.남): ㅋㅋㅋㅋㅋ 아휴...
- 비비(30대.여): 전 그냥 내가 이렇다, 알아 달라고 하는 건데...
- 보노보노(20대.여): 저희 신랑은 한번이라도 그래줬으면...
- 비비(30대.여): 너무 반대의 상황이라도 문제예요. 제가 꼭 무슨 남편 조종하는 여우같잖아요.
◈ 명절 가사 노동을 바라보는 남vs여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주부 4명 중 1명 꼴로 '명절 기간 남편의 집안일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네 명의 가정에서는 가사 분담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물었다.
- 보노보노(20대.여): 넵^^
- 비비(30대.여): 넵.
- letsgo1234(40대.남): 네.
- 김하루(30대.남): 방금 와이프한테 물어보니 자기가 더 많이 한답니다.
- letsgo123(40대.남): 주변에 보면 까딱도 않는 친구들도 있더군요.
- 비비(30대.여): 남성분들은 혹시 처가에 가시면 설거지 같은 거 해주시나요?
- 김하루(30대.남): 처갓집에 가면 설거지는 제가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어요. 장모님이 설거지 절대 못하게 하셔서.
- letsgo1234(40대.남): 처가 가면 안시킵니다. ㅎㅎ
- 비비(30대.여): 제 남편은 시댁에선 열심히 하는데 친정가선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물론 저희 엄마도 시키시지 않겠지만 집에서도 잘 하고 하면서 친정 가서 설거지 하거나 하면 큰일나는 줄 알아요 ㅎㅎㅎ 그게 엄청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더라고요?
- 김하루(30대.남): 저희 집도 부산이다 보니 다들 집안일을 안 하세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티내면서 음식 만들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면서 궁시렁거려요.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아버지부터 삼촌들까지 눈치조차 안 보니까요.
- letsgo1234(40대.남): 명절엔 부침개, 산적, 동그랑땡 등 전 종류는 제가 맡아서 합니다만. 어머니께서도 아내 설거지 도와주라 하시고요.
- 비비(30대.여): 전 친정 가서도 잘 하는 모습 보여주면 좋겠는데...직접 하지 않아도 하겠다는 의지만 보여도 엄마가 그냥 ‘우리 사위 딸 많이 도와 주겠구나’ 하고 안심하실 것 같아서요.
- 김하루(30대.남): 그래도 요즘에 제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집안일 분담은 다들 확실한 것 같더라고요.
◈ "한 세대가 지나면 해소될까…" 풀리지 않을 숙제란 건 알아
- 김하루(30대.남): 결혼이라는 제도가 어쨌든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만큼, 한국에서 특히 여성들이 힘들 수밖에 없는 지점들에 대한 남성 배우자 분들의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저만 해도 특히 명절 때에 집안일을 '돕는다'는 관념에서 아주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구요.
- letsgo1234(40대.남): 어머니 아버지 나이 드시고 힘들어지시면서 노후에 같이 사시려면 자식들 의견도 들어주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잘 표현하는 기술이 필요하죠.
- 김하루(30대.남): 명절 때 뭔가 거창한 걸 준비하고 바라기보다는, 같이 모여 소박하게 식사하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letsgo1234(40대.남): 명절에 음식 만드는 것을 즐기세요.^^ 허리 아프고 그러지만 재밌습니다. 내 허리가 조금 아프면 아내 허리는 안 아프겠죠.
- 비비(30대.여): 뭐 결국 이번 설도 똑같겠죠? ㅜㅜ 사실 여자입장에선 도와주는 정도만으로도 고맙습니다.
- letsgo1234(40대.남): 한 세대가 지나면 지금의 명절갈등이 사라질까요?
- 비비(30대.여): 아니요 ㅎㅎㅎㅎ남자 분들은 군대 다녀와 보셔서 알 것 같아요. 조금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는 그런 것...
- letsgo1234(40대.남): 음.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인가요.
- 비비(30대.여): ㅎㅎㅎㅎㅎ 가족은 '안보면 그만'이 안 되니까
- letsgo1234(40대.남): 손편지 쓰는 것 어떨까요?
마칠 시간이 다 돼서도 좀처럼 끝나지 않던 카톡 대담. 아마 우리는 상대방에게 서운하고 집안일이 힘든 것을 해결하는 것보다도, 털어놓고 공감할 대상이 더 필요했던 것 아닐까.
각본도 방향도 없이 마음대로 흘러갔던 이날의 대화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겠나'란 결론으로 다소 허무하게 끝났다.
하지만 무언가를 당장 바꾸는 것보다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게 때로 더 효과적일 게다.
2014-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