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피아노·미술 학원 어디 갔을까

 

11년째 서울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한모(41·여) 씨. 긴 한숨과 함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수강생들이 갈수록 줄기 때문이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수강생은 60명에 육박했다. 한정된 학원에 많은 학생들을 다 받을 수도 없어 대기자까지 받을 정도였다.

지금은 겨우 15명. "이것도 그나마 조금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11년 전에 비해 수강생은 1/4로 줄었지만 수강료는 그동안 4만원 올랐다.

학생 수는 줄었지만 일은 줄지 않았다. 1시간 피아노 레슨 뒤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원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것도 한 씨의 일이다. 쉴 새 없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부모들이 애를 피아노 학원에 보낸다"는 한 씨는 "부모가 애를 데리고 오면 제가 먼저 해드리겠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방학이라 맞벌이 부부들이 애들을 관리하기 힘들다보니 집 근처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다른 일정까지도 원장에게 맡기는 것이다.

한 씨는 최근 우쿨렐레와 오카리나 1급 자격증까지 땄다. "학생 수가 워낙 없다보니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라도 뚫어볼까 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예고와 명문대 음대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로 유학까지 갔다온 한 씨로서는 자존심이 크게 상한다. 하지만 영어 앞에서는 유명 음대고 유학도 아무 소용 없었다.

한 씨는 "아이의 영어 교육이 시작되면 피아노를 그만두게 된다"고 말했다. "피아노는 오래 걸리는 시간과 정성에 비해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씨는 설명했다.

"영어는 오래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피아노는 오래 한다고 학교 성적을 받는 것도 아니고 성공과 연결짓기는 어렵다"는 인식도 아이들을 음악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초3 성적 따라 미술→피아노 순으로 중단
 

또다른 피아노 교습소 원장 정모(46·여) 씨도 영어에 밀리는 현실을 무섭게 느끼고 있다.

20년째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 정 씨는 "처음에는 학생 수가 10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다른 교사들까지 여럿 두고 학원을 운영할 정도였다.

하지만 학생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8년 전 학원이 아닌 교습소로 바꿔 소수 정원제로 운영하고 있다.

정 씨는 "피아노는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계속해도 끝나는 시점이 없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공부만하기에도 시간이 적고 너무 바쁘다. 그런 상태에서 피아노를 계속 하기란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학교 시험 점수에 따라 판도가 갈라진다. "학교 성적이 안나오면 제일 먼저 미술 학원을 끊고, 그 다음에 피아노를 끊는다"고 정 씨는 허탈해했다.

영어학원 교육비도 피아노를 그만두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정 씨는 "예전에는 영어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이나 가격이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요즘은 영어학원비가 상당하다"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비싸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입시 필수조건이 아닌 피아노부터 끊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원 40명 중에 초등학생은 달랑 6명

서울 문래동에서 만난 미술학원 원장 박모(40·여) 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0년 전만 해도 학생수가 80명 정도 됐는데 이제는 절반 수준"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박 씨는 "그래도 정원이 어느 정도 있는 건 군데 군데 있던 동네 미술학원들이 모두 문을 닫아 이렇게 된 것"이라며 "좋아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10년 전과 달라진 건 학생 수뿐만이 아니다. 학생 구성도 달라졌다. 중고등학교 수강생은 물론 초등학교 수강생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현재 박 씨의 40명 수강생 중 초등학생은 겨우 6명. 나머지는 모두 4~6세 입학 전 아동들이다.

박 씨는 "영어학원을 다녀야 한다며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학원을 그만두는 게 공식처럼 됐다"며 "이런 추세라면 미술학원을 그만두는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질텐데 정말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내 음악·미술 대회↓ 방학 숙제도 '문제집'

아파트 상가나 동네 골목골목마다 하나씩은 자리잡고 있던 동네 피아노, 미술학원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까지 1만 6000여 곳에 달하던 전국의 음악학원은 2009년 1만 5070곳, 2011년 1만4935곳, 지난해에는 1만 4600여 곳으로 점점 줄고 있다.

미술학원 역시 지난 2009년 6402곳에서 2011년 5783곳, 지난 해에는 5300여 곳으로 4년새 10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매년 250곳씩 추억의 '동네 미술 학원'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교육을 시작하는 풍토로 바뀌면서 예체능 교육이 홀대받고 있는 게 주원인으로 꼽힌다.

미술학원장 박 씨는 "예전에는 교내 미술대회도 자주 있고 상도 자주 줬지만 지금은 방학 숙제에도 미술 과제물은 전혀 없고 '문제지 풀어오기, 독후감상문 쓰기' 같은 것들뿐"이라고 말했다.

피아노나 미술학원이 줄어드는 만큼 외국어학원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6년 10315곳이던 외국어학원은 2012년 18340곳으로 6년새 8000여 곳 이상 증가했다.

 

전인교육 연구소 유진우 부소장은 "인성적으로 발달하고 살아가면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영어교육처럼 한 쪽에 편향되는 현상은 교육의 본질을 잃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부소장은 "지금은 점수를 많이 받고 답을 직접 가르쳐주는 기능적 교육만 남아있다"며 "음악, 미술 등에서 다양한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입시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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