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남성은 화장실에서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이 '자존심'으로 여겨지면서 당연시됐다.
하지만 최근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처럼 화장실에서 앉아서 소변을 보는 습관이 퍼지고 있다.
◈ "'앉아 쏴'는 공동생활의 배려"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덕환(30) 씨는 '남다른' 습관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8년 전부터 이 땅에 두 발로 선 뒤 20여 년을 지켜온 '서서 쏴'를 포기하고 '앉아 쏴'를 시작했다.
김 씨는 "대학 시절 자취를 시작하고 직접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서서 소변을 눌 때 주변에 튀어 누렇게 방울이 묻어 있었다"면서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앉아 쏴' 습관을 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서 쏴'를 할 때와 비교해 시간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앉아 쏴'를 시작하면서 더 쾌적한 환경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최근 결혼한 김 씨는 '앉아 쏴' 습관이 공동생활을 하는 이에겐 '배려'의 문제라고 규정한다.
김 씨는 "아내도 이 습관을 좋아한다"면서 "나 하나가 습관을 바꾸면 아내와 아이들에 배려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역시 남자는 '서서 쏴'"
하지만 이런 '앉아 쏴' 습관은 중장년층에게는 '남자다움'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서울 강남에서 만난 김모(75)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앉아서 볼일을 보느냐"면서 "역시 남자는 서서 볼일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서 쏴'는 가족 사이에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주로 주부들이 오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앉아 쏴' 논쟁은 단골 주제다.
서서 싸는 경우 소변이 변기 밖으로 튀어 위생적으로 좋지 않고 냄새도 나기 때문에 남편을 설득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결혼 4년차인 한 여성은 "변기에 오줌이 묻어있을 때마다 구토가 쏠린다"면서 "항상 고친다고 말만 하고 못 고치는데 고칠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여성은 "앞으로 40년 넘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갑하다"고 토로했다.
남성으로 추정되는 한 회원이 "서서 소변을 보도록 강요하는 것은 남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억누르는 행동"이란 글을 올리자 게시판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댓글에는 "서서 볼 때 오줌 방울이 칫솔까지 튄다는데 그걸로 칫솔질하면 좋겠나", "다른 신체를 가진 남자와 여자인데 간섭하는 건 싫다", "성 정체성을 위해서 남성은 대변도 서서 봐라"는 등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미 미국에서는 지난 2000년 '서서 소변을 보기에 반대하는 어머니들의 모임'(MAPSU, Mothers Against Peeing Standing Up)도 결성되는 등 사회적 논의가 오래전부터 이뤄지고 있다.
◈ 전문가들, "건강에 위협은 없지만 전립선 비대증에는 도움"사실 '서서 쏴'가 심각한 건강의 위협을 초래한다는 의견에 대해 현직 의사들은 대체로 동의하지 않았다.
서울의 한 보건위생학과 교수는 "오줌 자체는 무균상태지만 유기물이 있어 세균이 자랄 수 있고, 세균 가운데 병원균이 있을 수 있어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면서도 "서서 소변을 봐서 오줌 방울이 튀어 질병을 더 많이 초래했다는 증거도 없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앉아 쏴' 습관은 고령화가 심화되는 한국 사회 환경에서 남성의 건강에 좋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전립선관리협회 권성원 회장(강남차병원 비뇨기과 교수)은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남성들의 전립선 비대증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전립선 비대증이 오면 요도를 조여 소변 줄기가 갈라지고 남아 흐르면서 속옷에 젖어 악취가 나는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권 회장은 "최근 젊은 층도 앉아서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비슷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면서 "앉아서 소변을 볼 경우 복압이 높아져서 배뇨장애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립선관리협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중년 남성을 대상으로 '오줌 앉아 누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권 회장은 "이미 노령화 사회로 진입한 스웨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이러한 문제 때문에 공공 화장실에서 입식 변기를 줄이고 좌식 변기를 늘리자는 논의가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201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