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외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향후 행보에 초미의 관심사가 쏠리고 있다.
내리 패배하기도 했지만, 두 번의 대선에서 연속으로 절반에 가까운 국민 지지를 얻었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이 전 총재는 5일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4년만에 참석한 당 공식 행사에서 '정계 복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실제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것(정계 복귀)에 다 묻히고, 그 얘기만 토픽이 된다"는 이유였지만, 이같은 대답은 'NCND'(긍정도 부정도 안 함) 수준을 넘어 사실상 '긍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 주변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렇다면 이 전 총재는 과연 '무엇'을 노리고 대선을 일년여 앞둔 시점에서 정치 활동을 재개한 것일까. 이 전 총재측의 공식 입장은 '좌파정권의 재집권 저지'다.
이 전 총재 역시 정계은퇴 이후 첫 공식 석상에 나타난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줄곧 "2007년 대선은 친북좌파 주축세력과 비좌파세력의 대결양상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昌은 결국 '킹'으로 나설 것"=결국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 목적은 '정권 교체'이자,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누구'를 세울 것이냐가 핵심적인 의문으로 남는다. 이 전 총재의 행보를 두고 '킹 메이커'와 '킹'이라는 두 단어가 끊임없이 뒤따르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 최근 당 안팎에서는 '昌 대망론'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전 총재는 궁극적으로 '킹', 즉 '세번째 대선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를 가까이서 보좌했던 한나라당 한 초선 의원은 "킹 메이커였다면 지금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 전 총재 스스로 대선 주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전 총재가 각종 특강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연일 비판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대선에서 맞붙었던 두 사람의 '실정'을 부각시키면서 결과적으로 '기회비용' 측면에서 자신의 상대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가 5일 강연에서 "내 지지도가 50%에 이를 때도 있었다"고 강조한 점은 물론, 대선 패배의 원인을 여권의 '깜짝쇼'와 '네거티브'에 돌린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억울하게 패배했으며, 나를 뽑았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란 호소의 우회적 표현인 셈이다.
당내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재가 지난 4월 첫 특강에 나설 때부터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며 색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전 총재가 국가원로나 조력자로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희끗희끗한 머리' 대신 '검은 머리'를 선택한 배경에는 노회한 이미지를 벗고 내년에도 '주인공'으로 나서겠다는 내심이 깔려있다는 시각이다.
◆昌이 노리는 건 '대세론'=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의 문제가 남는다.
우선 이 전 총재는 적극적인 대외 행보와 함께 기존 측근들을 중심으로 당내 교두보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정도로 막강했던 총재 시절 수준까지 영향력을 회복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등 지지율 20%대를 상회하는 유력 후보가 복수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전 총재가 파고들 '틈새'는 남아있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당장 5일 특강 때도 총재 시절 가까웠던 이재오·정형근·맹형규·김무성·이규택·고흥길·원희룡 등 의원 10여 명이 참석했지만, 이중 다수가 이미 특정 후보와 맞닿아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짐이 당내 경선을 염두에 둔 '세(勢) 확보 초기 작업'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자체가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현재의 '李-朴 쌍두마차' 체제가 당내 경선 때까지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이 전 총재에게 '결정적 모멘텀'이 발생할 여지도 없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이 전 총재가 내심 기대하는 '결정적 모멘텀'은 바로 그의 발목을 두 번이나 잡았던 '대세론'이다.
◆'킹 메이커'로 나선 뒤 '킹'으로=당내 경쟁 과정에서 '쌍두마차'의 한 축이 무너지고 특정 후보가 '대세론'을 탈 경우, 한나라당과 지지자들은 오히려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당 안팎에서 회자되는 '2002년 학습효과'다.
2002년 대선 당시 '대세론'으로 기세등등했던 한나라당 진영은 국민 경선을 앞세운 민주당의'초단타성 바람몰이'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당시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상대편의 '집중 네거티브' 역시 한나라당이 아직도 경계 1호로 삼고 있는 '학습의 산물'이다.
따라서 기존 '李-朴' 가운데 한 사람이 지지율 40%대를 꾸준히 웃돌며 '대세론'을 형성할 경우, '학습 효과'에 의해 한나라당과 지지자들 사이엔 이를 방치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작동될 수밖에 없다.
본선 직전까지 최대한 흥행효과를 이어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과 상대편의 집중 공격을 우려하는 '보호 본능'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 총재는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이같은 당내 심리를 역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대세론'에 밀린 특정 후보를 딛고 일어서 직접 '대세론'의 주인공과 맞붙는다는 시나리오다.
연거푸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대세론'과 '초단타성 바람몰이'를 이번엔 이 전 총재가 '사용'하겠다는 것.
이 전 총재가 5일 특강에서 "안이하게 이대로 가면 된다는 낙관론도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그런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당의 지지도, 후보의 지지도는 한갓 몇가지 깜짝쇼나 네거티브 캠패인에 의해 얼마든지 뒤집어지고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그의 언급은 표면적으로는 '경고'지만, 내심 '기대'가 담겼다는 것이다.
조기 과열 경쟁 양상을 경계하며 던진 "아무쪼록 아름다운 경선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언급 역시 단지 '빅3'를 향한 당부인지, 아니면 자신의 참여를 전제한 것인지조차 명확치 않다.
'모호함을 통해 복선을 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눈이 다 내린 다음' 시점은=따라서 이회창 전 총재의 행보를 두고 '킹 메이커냐, 킹이냐' 따지는 것은 더이상 큰 의미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킹 메이커'와 '킹' 양쪽 모두에 해당한다는 것.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 전 총재가 '정권교체를 위한 킹 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선 뒤, 특정 시점에서 '킹'으로 직접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그가 기존 후보 가운데 한 명을 지원하는 측면의 '킹메이커' 단계를 거칠 가능성은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시점은 '언제'가 될까. 물론 가장 정확한 정답은 '이 시각부터 당내 경선 사이'다.
이와 관련, 이회창 전 총재는 지난 9월 지지자들의 '대권 도전' 촉구에 대해 "이 눈이 다 내린 다음에"라고 간접적으로 시기를 언급한 바 있다..
당시 CBS 뉴스레이다에 출연한 '창사랑' 조춘호 대표는 "대통령 후보로 한 번 더 나와 달라는 뜻을 직접 전달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전 총재가) '이 눈이 다 내린 다음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밝혔다.
◆'昌의 귀환' 곱지 않은 시선=정치권 일각에선 이 전 총재가 본격 대선 국면에 들어가는 내년초 공식으로 정계에 복귀한 뒤, 내년 3월경 대권 도전 선언을 할 것으로 조심스레 내다보고 있다.
현행 당헌당규상 대선 출마 희망자는 선거 240일전부터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이 12월 19일임을 감안하면 예비후보 등록 시기는 4월 중순 이후가 된다.
등록된 예비후보는 자동으로 상임고문으로 위촉돼 당의 각종 회의에 참석하면서, 당무 전반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전 총재가 당내 활동 보폭을 넓혀가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조기에 예비후보로 등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이같은 '昌의 귀환'에 대한 당 안팎의 부정적인 시각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당내 소장파인 수도권 출신의 한 의원은 "이 전 총재의 복귀는 '차떼기당' 이미지만 강화시켜줄 뿐"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영남이 지역구인 한 중진 의원도 "이 전 총재가 행여 후보로 나선다 해도 이미 사라져버린 당내외 기반을 되찾긴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2006-12-06 오후 3:35:34 | ONnOFF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