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여왕'인가, '눈치공주'인가…'박근혜 논란' 가열

최대 파국을 면한 정치권에 3일 때아닌 '박근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른바 '숟가락 논란'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전날 미디어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 막바지 담판 도중 "시기를 못박는 것 정도는 야당이 받아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여권의 강경 기류에 힘을 실어줬다.

박 전 대표는 또 "한나라당이 그동안 미흡한 부분에 대해 상당히 많은 양보를 했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노력을 많이 했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같은 발언 직후 김형오 국회의장은 민주당 입장을 대폭 수용한 중재 흐름에서 '돌변', 쟁점 미디어법안들의 직권상정 수순에 돌입했다.

결국 야당은 오전까지만해도 예기치 못했던 '두 변수'에 당혹해하며, 직권상정을 면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 합의문에 서명해야 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파워가 또다시 입증됐다"며, 파국으로 치닫던 국회 정상화의 공(功)을 박 전 대표에 돌렸다.

파국과 타협의 결정적 기로에서 정국을 뚫는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 차기 대권주자이자 비중있는 중진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는 것.

협상 타결 직후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온 박희태 대표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도와주니까 얼마나 반갑고 좋으냐"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개혁 성향의 원희룡 의원 역시 3일 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박 전 대표가 말한 것은 만점짜리 정답"이라며 "국민과 정치가 중재 역할에 얼마나 목말라하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희망이 보이지 않던 협상도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이같은 행보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침묵을 유지하며 여론 '눈치'만 보다가 이미 흐름이 잡힌 뒤에 편승하는 '포퓰리즘' 행태 아니냐는 것.

당장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사안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쐐기를 박았다.

공 최고위원은 "일등공신은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라며 "박 전 대표가 그런 얘기를 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이같은 발언은 날로 정국 장악력을 높여가는 박 전 대표에 대한 주류 친이계의 견제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원희룡 의원은 "당내에선 '친이가 실컷 속도전을 했지만 결국 박 전 대표만 도와준 결과가 됐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온다"고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 야권 "박근혜,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 혹평


그동안 여권 속도전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소신 발언'에 일정 도움을 받아온 야권의 배신감도 한층 더할 수밖에 없다. 야권은 그간 "박 전 대표는 침묵을 깨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내심 '지원 사격'을 바라왔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박 전 대표가 원칙 없이 그때그때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건 정말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그간의 발언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는 것.

실제로 박근혜 전 대표는 불과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만 해도 "내 입장은 전에도 얘기했듯이 그 입장 그대로"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2일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쟁점 법안일수록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따라서 불과 한 달만에 미디어법안 처리 찬성으로 돌아선 건 자기모순이자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다.

문방위 간사인 전병헌 의원 역시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참으로 박 전 대표는 어처구니가 없다"며 "박 전 대표가 얘기한 '국민적 공감대'는 친이와 친박의 공감대임이 드러났다"고 성토했다.

전 의원은 특히 "위선적인 껍데기가 벗겨진 만큼, 국민도 본질적 실체적 평가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표의 '신비주의'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을 거론했다.

민주노동당도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나타나 모든 정치적 성과를 냉큼 집어먹으려는 얌체 정치인"이라고 박 전 대표를 혹평했다.

박승흡 대변인은 "공주마마는 몸속에 내재된 재벌편향성과 비민주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며 "하지만 불현듯 나타나 한마디 던지는 식의 인기 관리는 이번으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숟가락 논란', 박근혜 영향력 증명

그러나 이처럼 가열되고 있는 '숟가락 논란' 자체가 '미래 권력' 박 전 대표가 가진 막대한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데에는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이정현 의원은 '숟가락 논란'에 대해 "본질과 관계없는 평가"라고 일축하면서 "박 전 대표가 무슨 계산을 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의식하고 무서워하는 정치인 본연에 충실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박 전 대표가 매번 '결정적 시점'에 발언을 꺼내놓는 점에 대해서도 "협상 주체들이 막판 교착점에 있을 때 그저 원칙과 상식을 얘기한 것"며 "그러면 왜 본인들은 그 말대로 따르냐"며 여야 일각의 비판에 각을 세웠다.

2009-03-03 오전 11: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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