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만 더 걸면 본전을 찾을 수 있는데…'.
이대로는 결국 돈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손에 든 무엇인가에 코를 박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경기정보를 꼼꼼하게 적어 놓은 이른바 '정보지'였다. 이 정보지는 각 경기의 내용을 상세하게 분석해 예상 우승 선수까지 적어놨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선수분석이었다. 해당 선수의 신체 조건과 함께 나이, 고향, 경륜 입문 기수뿐 아니라 최근 장염에 걸려 고생했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모두 분석돼 있었다.
정보지를 자세히 읽고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보지에서 우승 후보로 찍어 놓은 선수가 반드시 우승할 것만 같았다.
역시 우승 확률이 높은 이 선수의 배당률은 낮았다. 모니터 배당률 표에는 가장 배당률이 낮은 선수, 즉 우승 확률이 높은 선수의 배당률은 마치 자신에게 돈을 걸라는 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본전 생각이 나 이 선수에게 단식으로 앞 경기에서 딴 4800원에 1만 원을 더해 모두 1만 4800원을 '몰빵'했다.
이 판단이 '오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피 같은 1만 4800원은 한 번의 흥분과 스릴로 모두 날아갔다.
◈ 고수에게 들은 조언 "뭘 하려고 해!"
불과 두 경기였지만 절반의 성공과 처절한 실패. 의기소침해졌다. '고수'에게 조언을 듣기로 했다.
발매소 밖 흡연소에는 경기 사이에 담배를 피려 나온 참가자로 가득했다.
담배를 들고 있던 40대 여성에게 접근해 오늘이 처음이라고 고백했다.
"뭘 하려고 해! 내가 처음이라니까 알려주는 거야. 오늘은 왔으니까 몇 만 원만 가지고 놀고 얼른 나가. 뒤돌아보지 말고".
6년 전 처음 경륜에 발을 들인 그는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 집 한두 채씩은 말아먹은 사람들"이라며 "이건 무조건 지는 게임이지만 들어가면 나오지도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삼복식'을 추천했다. 1~3등을 순위에 상관 없이 맞추는 방식이다.
"내가 삼복식으로 몇 배 맞췄느냐면 800배가 터진 거야. 2000원 걸고 160만 원 딴 거지. 조금 가더라도 중배당으로 돈을 거는 게 더 낫지."
앞 경기에서 제일 낮은 배당에 돈을 건 기자의 전략도 "그러다 망조 든다"며 처절하게 비판 당했다.
'꾼'들 사이에서는 제일 낮은 배당률을 '빤짝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50대 남성은 "3년 전 딱 한 경주를 남겨두고 157만 원을 땄는데 욕심이 났다"면서 "무조건 1등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빤짝이' 기수에게 2.4배 배당률로 돈을 걸었지만 결국 안 들어왔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 7.8배 적중, 떨치기 힘든 희열과 중독
이제 기자에게 남은 밑천은 1만 원이었다. 이 1만 원을 가지고 단 한 판으로 결판을 내기로 결정했다.
고수들의 조언과 정보지를 종합해 삼복식으로 네 게임을 걸었다.
거짓말처럼 삼복식 네 게임 가운데 2800원을 건 한 게임이 적중했다. 전광판에 뜬 배당률은 무려 7.8배. 1만 원을 걸어 결국 2만 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쥐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쾌감의 둑이 터진 듯 몸 구석구석까지 짜릿함이 흘러들었다. '100원이라도 더 걸 걸'이라는 아쉬움도 동시에 밀려왔다.
3경기에서 2판까지 돈을 날렸으나 셋째 판에서 본전의 60%까지 복구했다. 한 판만 더 하면 본전은 물론 돈을 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 순간 울리는 벨소리. 취재를 마치라는 데스크의 지시였다. "딱 한 판만 더 하면 본전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다 멈췄다. '아, 지금 취재 중이었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장외발매소를 나오자 흥분은 가라앉고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데스크의 벨소리가 울리지 않았다면 모든 돈을 날렸겠지'.
하지만 7.8배 적중으로 돈을 딴 마지막 판의 희열은 쉽게 떨치기 힘들었다. 고작 7.8배가 이럴진대, 수백 배가 맞으면 절대로 그 희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중독의 시작은 바로 이런 것이리라.
201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