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연풍' 어디가고…민생도 정치도 '세밑 실종'


대한민국호(號)가 바야흐로 '실종'의 세밑을 맞고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가뜩이나 민생은 설 곳을 잃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려 머리를 맞대야 할 정치권에 정작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민의의 전당' 국회는 23일로 '반신불수' 엿새째를 맞는다. 전날도 대부분 상임위가 대치 속에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갔다. 간신히 18대 국회를 열며 여야동성으로 다짐했던 '대화와 합의'는 온데간데 없다.

새해 예산안 처리가 그랬고, 한미FTA비준안 상정도 그랬다. 오직 돌격과 저지로 대변되는 '작전'만 난무할 뿐이다.

연말마다 예산안을 놓고 옥신각신했던 예년과는 또 다르다. 이제는 별의별 법안들을 놓고 저마다 배수진을 쳤다.

힘있는 여당은 100개 법안에 '민생'과 '경제살리기' 등의 딱지를 붙였다. '이념' 법안은 야당과 협의하겠다던 당초 방침도 이미 접었다.

거대자본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미디어법도, 정보수집 범위를 확대하는 국정원법도, 도청을 합법화하는 통신비밀보호법도 모두 '경제살리기' 법안에 포함됐다.

야당에는 대신 성탄절까지만 대화하겠다고 '통첩'을 보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최후의 대화"라고 못박는 한편, '전광석화'에 또다시 방점을 찍었다.

홍준표 원내대표 역시 "민주당이 협의처리를 약속해야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26일 직권상정하겠다"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러다보니 그다지 '쟁점 법안'이 없는 국토해양위마저 무더기 직권상정을 세우다 일찌감치 '발각'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기류는 물론 '수(數)의 우위'에 기반한다. "국민들이 다수를 만들어준 의미를 살려야 한다"는 게 그 명분이지만, 정작 일방독주식 '밀어붙이기'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질(質)의 우위'를 100% 선점한 것도 아니다. 국민들의 시선 역시 그리 곱지 않긴 매한가지다.

정작 국민들이 '촛불'을 건넬 때는 엉거주춤하더니, 리더십에 '발등의 불'이 떨어지자 허둥지둥 '야성(野性) 찾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 여전히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당 지지율은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국정과 민생의 주도권은 결국 집권당에 있다는 점에서, 합의 대신 강행을 선택한 한나라당의 '힘의 정치'가 결국 '정치 부재'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야당을 '파트너'로 인식하기보단 '돌파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거센 반발과 부작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박그룹 등 당내 일각에마저 '강행 일변도'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말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뜻의 '시화연풍'(時和年豊)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제시한 바 있다.

어차피 경제 위기로 올해 '연풍'이 이미 물건너갔다면, 여권은 지금 강행보다는 대화와 합의에 바탕한 '시화'에 나서야 할 때다.

2008-12-22 오후 6:58:14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