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범 열사 딸' 별이의 특별한 돌잔치

 

 

"붓으로 열심히 공부해 현명한 사람이 돼서 꼭 어려운 사람들 도와줘야 해. 정의로운 세상 꼭 만들자".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붓을 쥔 손을 번쩍 들어보이는 최 별(1) 양. 곱게 수놓인 까만 족두리가 무거운지 연신 만져대면서도 자기 손으로 다 잡아도 부족한 붓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13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예수회센터에서 열린 별이의 첫 돌잔치.

별이는 낯선 장소, 처음보는 사람들 앞에서 울지도 않고 엄마 미희(28) 씨의 품에 꼭 안겨있다. 미희 씨도 이날만큼은 미소를 지었다.

아빠도 없이 첫 돌을 맞게된 별이. 별이와 별이 엄마에게 지난 40여 일은 정말이지 버거운 시간이었다.

별이의 첫 생일을 한 달 앞두고 별이 아버지 최종범(32)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던 최 씨는 지난 10월 31일 자신의 차 안에서 연탄을 피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삼성서비스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다.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 선택했다.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

13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 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최종범씨 딸 돌잔치에서 주인공인 최별양이 밝게 웃고 있다. 사진=송은석 기자

13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 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최종범씨 딸 돌잔치에서 주인공인 최별양이 밝게 웃고 있다. 사진=송은석 기자

SNS 단체방에 남긴 메시지가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유가족들은 최 씨가 위장 도급과 건당 수수료 등 삼성의 노골적인 노동자 착취·탄압으로 희생됐다며 삼성 측에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은 최 씨가 숨진지 43일이 지나도록 사과는커녕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최 씨의 장례식은 하루하루 미뤄졌고, 그는 아직 차가운 냉동고에 있다.

별이 아빠를 그렇게 보내고만 별이 엄마 미희 씨는 결국 젖먹이를 재워놓고 차가운 거리로 나왔다.

미희 씨는 낯선 서울 땅에서 긴긴 하루를, 또 시리기만 한 주위 시선들을 온 몸으로 감내해야만했다.

그렇게 추위에 외로움에 오들오들 떨기를 수차례. 그러는동안 다가온 별이의 생일이 다가왔다.

최 씨가 떠나지만 않았으면 지난 8일은 별이의 돌잔치로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아빠 얼굴도 그 조그만 눈에 다 넣지 못한 별이에게, 아빠도 없는 곳에서 더구나 별이 아빠에 대한 엄마의 원망과 그리움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딸의 생일을 챙겨주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 씨의 동료들을 비롯해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들이 먼저 미희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별이를 떼어놓은채 줄곧 길바닥에만 있었던 별이 엄마에게는 꿈만 같은 소식이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딸 별이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아빠의 뜻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이들이 모여 별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13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 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최종범씨 딸 최별양의 돌잔치에서 한 참석자가 선물을 들고 있다. 사진=송은석 기자

13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 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최종범씨 딸 최별양의 돌잔치에서 한 참석자가 선물을 들고 있다. 사진=송은석 기자

이렇게 마련된 '별이 빛나는 돌잔치'. 많은 단체에서 축하공연을 해주면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돌잔치에는 350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별이의 탄생을 축복했다.

일주일만에 갑작스럽게 잡힌 행사다보니 시작 전부터 스피커가 꺼지고 전기도 끊기는 등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행사마치는 순간까지 이곳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별이에게 많은 아빠들이 나타났다. 최 씨의 동료들이 산타 복장이나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고깔과 망토를 쓰고 등장해 별이의 아빠가 돼 준 것.

동료들은 "별이가 무서운 꿈을 꾸면 악당을 좇아줄 아빠가 없고, 동물원에서 목마를 태워줄 든든한 어깨가 없어서 걱정"이라며 별이를 향해 쓴 편지를 읽었다.

지금은 아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별이지만, 나중에 아빠를 찾고 "왜 나는 아빠가 없을까" 생각할 나이가 되면 참 많은 고민과 가슴 아픈 일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동료들.

이들은 "별이가 밝고 올바르게 커서 꼭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딸이 되길 바란다"며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기도했다.

13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 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최종범씨 딸 돌잔치에서 주인공인 최별양이 엄마 이미희씨의 품에 안겨 있다. 사진=송은석 기자

13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 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최종범씨 딸 돌잔치에서 주인공인 최별양이 엄마 이미희씨의 품에 안겨 있다. 사진=송은석 기자

무엇보다 "별이가 걸어가는 길에 항상 아빠들이 함께 할 것이고, 이 많은 아빠들이 꼭 아름다운 세상, 이마에 흘린 땀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놓겠다"며 별이 앞에서 맹세했다.

최 씨의 둘째 형 최종호(35) 씨는 감사를 표하며 "동생이 별이에게 돌잔치도 해주지 못하고 떠나는 걸 많이 아파했을 것"이라며 "동생이 별이를 두고 떠난 게 아니라 동생이 작은 씨앗이 돼 별이에게 더 좋은 세상을 선물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희 씨도 "모두가 별이 아빠가 돼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남편이 하늘에서 좋아할 것같고,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신 것처럼 힘내서 별이 예쁘고 사랑스럽게 잘 키우겠다"고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약속했다.

 

 

20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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