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마저 '노조 탄압 시대'

 

 

서울 중랑구 시설관리공단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7명이다.

이들이 애초부터 7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2월 처음 노조가 생긴 뒤 조합원은 계속 늘어나 지난 9월 7개월여 만에 110명 조합원의 지지를 받았다.

노조는 순항하는 듯 보였고 시대적 흐름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긴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지금, 노조는 하루아침에 거의 모든 조합원을 잃었다. 노조 측은 "공기업인 사측이 끊임없이 노조를 탄압했기 때문"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공기업마저 노조 탄압…회유와 압박에 조합원 갈 곳 없어

공기업의 노조 탄압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월 설립된 중랑구 시설관리공단 노조는 지난 5월부터 사측과 단체교섭을 시작, 체불된 야간근무 수당 지급 및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공평한 처우 개선을 위한 인사제도 조정 등을 협상안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10차 교섭이 결렬되면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가 시작됐고, 노조는 지난 8월 야간근무 수당 체불 건으로 북부고용노동청에 이사장 등 사측을 고발했다.

이 때부터 조합원들에 대한 사측의 교묘한 압박과 회유가 시작됐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먼저 이사장으로부터 "긴급한 행사 및 재난·재해 상황을 제외하고는 근무시간에 모든 업무를 처리하라"는 초과근무 전면 금지 지시가 내려왔다. 조기출근·야간퇴근 수당 3만 원도 삭감됐다.

노조에 따르면 "초과근무에 따른 수당은 30~60만 원에 달해 급여의 1/4 상당"이다. 또 지난 10년 간 초과근무는 통상적으로 발생해 보통 오후 9시쯤 퇴근하는 게 일상적이었다는 것.

김이회 노조 분회장은 "특히 하급직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생계에 상당한 부담을 줄만한 금액이 급여에서 느닷없이 삭감된 셈이라 더 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당 삭감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노조 측이 설립 이후 부터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해 와서 출퇴근 시간을 30분씩 조정하고 시간외 근무를 없앤 데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근무시간 내에 모든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있을 뿐더러, 조사해보니 불필요하게 초과근무를 하고 수당을 받은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을 상대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압박 및 회유 또는 노조에 대한 비방도 계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는 너무 과격하고, 안 그래도 공단이 어려운데 노조에 가입해서 되겠느냐는 식의 뒷말도 오고갔다는 것.

이처럼 노사간 갈등이 팽팽하게 계속되던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일 조합원인 체육 전문직 27명이 집단으로 노조 탈퇴 원서를 냈다.

당시 노조 핵심간부인 교육국장이자 체육 전문직 중 직급이 높았던 윤모 씨는 김 노조 분회장에게 탈퇴의사를 밝히면서 "사측에서 노조를 탈퇴하면 비정규직이거나 9급인 체육 전문직을 8급으로 승진시켜주고 초과근무 금지 및 교대제 변경 등 근무제도 불이익을 해소해 주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체육 전문직들 사이에서 노조 탈퇴 여론이 급부상했다는 것.

노조의 중추 역할을 맡던 윤 씨 및 체육 전문직들이 줄줄이 탈퇴하면서 노조 분위기는 급격히 악화됐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인 4일 30명, 5일 20명, 6일 10명의 조합원이 탈퇴했다. 27명의 체육 전문직 조합원이 탈퇴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전체직원 190여 명 가운데 조합원은 103명에 달했었다.

노조가 사측의 '부당 거래'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윤 씨는 나흘 뒤인 5일 사내 통신망을 통해 공단 전 직원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내 자신이 한 이야기를 번복했다.

"(김 노조 분회장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컸던 저는 탈퇴 명분을 설명하고자 하나하나 사실보다 부정확한 얘기들로 변명을 했다"는 것. 또 "분회장은 항상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여러분을 이용하려 한다"는 등 인신공격성 비방도 서슴지 않았다.

공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체육 전문직 직원들이 먼저 일련의 사태를 사과드리고 싶다고 찾아와서 '탈퇴 후 자신들 문제를 잘 살펴달라'는 의견은 피력했지만, 탈퇴는 여러분 선택이고 어떤 조건도 달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면서 "이미 부당노동행위 건으로 고소·고발 사태까지 벌어진 마당에 그런 회유를 하겠느냐"고 반박했다.

노조는 결국 불안에 떨며 연락해오는 조합원들에게 "노조가 힘없이 와해됐다"면서 "혹여 사측이 덜컥 재계약을 안 해주더라도 지금은 구제해 줄 힘이 없으니 일단 탈퇴하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 위협에 어용노조 논란까지…정부 산하 공기업 맞나?

중랑구 뿐 아니라 양천구와 강북구의 시설관리공단에서도 노조 탄압 사례가 속출했다. 특히 힘없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상대로 한 지속적 압박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천구 시설관리공단 노조 위원장은 노조가 설립된 지 1년도 안된 지난해 11월 해고됐다. 다행히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고 4개월 만에 복직됐다.

그러나 노조 측의 잇단 승소에도 불구하고, 지난 4일 비정규직 조합원 10명의 명단을 공개한 지 4일 만에 조합원들이 원하지 않는 근무지로 발령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조주연 노조 위원장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공개되면 불이익을 받을까봐 1년간 미뤄오다가 일부가 결단을 내린 건데 사측의 태도는 암담했다"고 말했다.

강북구 도시관리공단의 사정도 비슷하다. 2년 전 11월 노조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에게 팀장급 간부들이 접근, '노조에 가입했느냐'며 압박을 가했다는 것.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에게 노조 관련 유인물을 나눠주고 나면 공단 직원이 찾아와서 '저런 것을 받지 마라'고 이야기하고 가는 일 등도 벌어졌다.

강북구 공단 노조는 지금까지 사측과 힘겹게 교섭해 나가고 있지만, 비정규직 처우 개선 요구에 대해 사측은 정부 지침과 내규 외의 내용은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김용택 조직국장은 "적어도 공공기관에서만큼은 비정규직을 쓰면 안 되는 것"이라면서 "안전행정부 등 정부는 공공기관 정규직화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지침이 바뀌는 게 없으니 지방 공기업들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고 비판했다.

노조의 교섭권을 약화시키고자 사측이 '어용 노조'를 내세우는 데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양천구 공단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대표노조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사측이 내세운 노조가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탈퇴하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으로 소속을 바꾸면서 인원을 70여 명으로 늘려 대표노조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조주연 노조 위원장은 "당시에 사측 팀장과 과장들이 가입원서를 갖고 다니면서 '이 쪽에 가입해야 회사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며 조합원을 끌어 모아갔고 우리는 그대로 임금협상권과 교섭권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또 "공기업들은 공식적으로는 노조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이는 말 뿐이고, 뒤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외치는 노조의 존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다"고 성토했다.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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