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나랑 1+1 필러 시술' 별걸 다 부추긴다
수능이 끝났다. 12년의 고생에는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친구들과 부담 없이 수다를 떨고 참았던 만화책도 실컷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소박한 단꿈에 젖어있는 내게 엄마가 다가와서 말한다. 너 대학 가기 전에 쌍꺼풀 앞트임이랑 코 필러 시술 해준다고 약속했던 것, 예약하러 갈래? 응? 3월 전에 붓기 빠지려면 지금 해야 돼. 엄마 진심이었어? 얘, 수험표 있으면 엄마도 1+1 할인이래.
◈열심히 공부한 당신, 살 빼고 성형하고 가실게요(?)
"코 수술이랑 한의원 피부과 치료가 제일 받고 싶어요", "안 그래도 하고 싶었는데 수험표 할인 받을 수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하는 거죠. 세일 상품이 하도 많아서 좀 더 알아보다가 겨울방학에 가 보려고요".
그동안의 생활을 청산하고 변신하고 싶은 수험생들의 욕구가 성형수술 등 외모 관리로 분출되고 있다. 이에 발 빠르게 합류한 성형외과들은 수험생 대상 마케팅 전선에 나섰다.
특히 성형외과가 즐비한 서울 강남 성형외과촌은 요즘 수능 특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할인 경쟁에 혈안이다. 수험표를 가져오면 30% 할인해주는 수험생 특별 할인 이벤트에, 눈과 코를 같이 성형하면 깎아주는 '세트메뉴' 구성까지 등장했다.
이 뿐 아니라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도 전에 없던 혜택이 쏟아진다. 자녀와 같이 예약하면 미간과 눈가 주름 개선 보톡스 시술을 1+1으로 할인해주는 식이다.
성형외과 말고 한의원, 치과 등에서도 다양한 '관리' 상품을 내놨다. 수능 후 대입 전까지 시간이 촉박한 점을 고려한 '하루 만에 가지런해지는 치아성형', 학부모 뿐 아니라 지인까지 할인받는 '한방 다이어트·여드름 치료'까지 다양하다. 수험표 지참과 사전 예약은 필수다.
다이어트 용품점도 성수기를 맞았다. '대학가면 저절로 살 빠진다는 엄마 말 믿지 말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다이어트 식품 네트워크 판매 광고가 블로그를 휩쓸고 있다. 각종 알약을 견본품으로 제공해 수험생들이 못내 지나치기 힘들다.
◈한 발, 아니 두 발 빠른 편입·유학·취업 컨설팅도 봇물
'대학 가서 인턴과 봉사활동 스펙을 쌓으려면 한가할 때 토익 1점이라도 더 올려놔야한다'.
토익학원들의 재촉에 갓 수능을 마친 고3들은 벌써부터 마음이 급하다. 수능 영어 패턴에 익숙해져있는 머리를 '취업용 실용 영어'로 바꿔 놓아야 한다는 설득은 그럴듯하다.
수능 성적이 부족해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편입과 유학을 권장하는 컨설팅 업체도 기승이다. 토플 성적 없이 유학원 및 해외 대학 부속 기관 프로그램 등에 등록했다가 과정을 마친 뒤에는 해외 명문대에 편입할 수 있다는 식이다.
국내 대학에 입학해 1년만 다니고 2년은 해외 대학에서 수학한 뒤 학위를 딸 수 있다는 '일석이조' 광고도 있다.
은평구에 사는 윤희성(18) 양은 "이렇게 까지 해서 대학을 가야하나 싶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성적이 덜 나와서 심란한데, 토익이나 편입 광고들을 보면 얄밉다"는 것.
또 유학 같은 경우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아이들만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이기도 하다. 김주연(18) 양은 "학원들이 '없으면 안 될 것처럼' 홍보하는데, 부모님이 힘들어 하셔도 더 손 벌려야 하나"라고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어" 보다는 "이제 다시 시작"
한 설문조사 결과 갓 수능을 끝낸 고3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일 1순위가 '미용과 성형 등 외모 가꾸기'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백만 원의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분위기는 분명히 과도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물론 아이들로 하여금 지난 십여 년간 '반짝반짝 빛나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게 만든 것은 사회와 교육이다. 이들이 돈을 들여 하루 빨리 변신하려고 하는 것은 오랜 기간 학원과 집만 오고가며 내면의 욕구를 참아왔던 데 대한 보상심리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김태훈 정책위원은 "대입 성적 하나가 사회적 지위나 가능성 등 인생의 많은 것을 지나치게 결정한다" 면서 "지금까지 내면적인 성장보다는 외적인 성과만 중시하는 공부에 매달려온 아이들이 또 하나의 외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해 성형을 택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심리를 마케팅으로 이용하려는 시장의 욕구가 맞아떨어져서 성형 열풍이 더 과열된다는 것.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먹고 크는 각종 학원계의 과장광고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정책위원은 "소위 '알아주는' 직업은 우리 사회에 10%밖에 안 되기 때문에, 나머지 90% 아이들은 뭔가를 또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힌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교육 시장은 이런 불안감을 마케팅에 이용하니 악순환은 반복되기만 할 뿐이라는 얘기다.
2013-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