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A씨는 올해부터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A씨는 바둑의 '바' 자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고심 끝에 바둑 규칙을 알려주는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미 흥미를 잃은 아이들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A씨는 바둑반 운영을 사실상 포기한 채 학생들에겐 교실에서 영화를 틀어주고 본인은 밀린 잡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처럼 바둑을 둘 줄도 모르는 A씨가 바둑반을 맡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해부터 교육부가 일선 중학교에 지시한 '학교 스포츠클럽 활동'을 배정받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 "체육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바른 인성을 키움으로써, 박근혜정부가 '4대 악'의 하나로 지목한 학교 폭력을 막겠다"며 스포츠클럽 활동 지침을 내놨다.
이에 따라 전북을 제외한 전국 중학교에서 스포츠클럽이 시행된 데 이어, 지난해 2학기부터 의무적으로 전국 모든 중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에 4시간씩, 크게 나눠 4~8개 학급 규모씩 스포츠클럽 활동을 편성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급하게 도입된 스포츠클럽 활동을 진행하느라 갖가지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는 형편이다.
우선 스포츠클럽 활동에 전문성을 갖춘 교사와 강사가 턱없이 부족해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각 학교가 자체적으로 외부로부터 체육강사를 고용하도록 했지만, 지난 4월 현재 외부 체육강사는 전체 스포츠클럽 활동 지도인원 3만 2천여 명 가운데 25.2%(8150명)에 불과하다.
스포츠클럽 활동이 단계적으로 도입되지 않고 처음부터 전국에 걸쳐 시행되면서, 적절한 자격을 갖춘 스포츠강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체육과 상관없는 일반교과 교사들에게 갑작스레 책임이 전가되는 바람에 현장에서는 스포츠클럽 활동이 '시간 때우기용 수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A씨는 "올해 봄 바둑반을 맡게 됐지만 이제껏 관련 교육이나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학생은 1천여 명인데 외부 강사는 한 명 뿐이라 본인 수업에도 바쁜 실정이어서 도와달라는 말도 못 꺼낸다"고 하소연했다.
더구나 스포츠클럽 활동 운영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젊은 신입 교사나 비주류 교과 교사에게 억지로 떠넘기는 등 교사간 갈등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교사 B씨도 "수업 시수가 적다는 이유로 사회나 과학, 미술 같은 교과 교사들에게 일이 몰린다"며 "자기 전공도 아닌데 누가 스포츠클럽 활동을 맡고 싶겠냐. 학교마다 갈등이 대단하다"고 털어놨다.
일부 교사들이 의욕적으로 스포츠클럽 활동을 진행하려 해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 체육 시간은 늘어났지만 비좁은 운동장과 부족한 체육 설비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중등 교사 C씨는 "아이들은 주로 축구처럼 인기 있는 운동에 몰리는데 운동장을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돼있다"며 "외부 체육시설을 이용하라지만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인솔하기도 부담스럽고 굳이 예산까지 쓰기에도 눈치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스포츠클럽 활동이 파행으로 치닫다 못해 사실상 '자습 시간'으로 전락하면서,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는 "7교시 부활의 꼼수가 됐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도입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아 현장에 많은 불만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시간을 꾸리고, 교사는 본인들의 여가를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는 관점에서 이해해달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미 외부 강사에게는 15시간 내외로 연수를 진행하고, 일반 교사들에게도 연수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가이드라인 책자를 제작해 보급하는 등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교사들은 "별다른 논의도 준비도 없이 갑자기 전국적으로 시행된 '졸속행정'일 뿐 아니라, 급조한 체육 시간으로 학교 폭력을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전시행정'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유승희 정책기획국장은 "학교 폭력을 예방하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일방적으로 체육수업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효과를 보긴커녕 교사와 학생의 불만만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논의도 없이 교육과정까지 바꿔가며 일주일에 4시간씩 일괄 진행하라 하니 현장에는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막겠다며 도입된 스포츠클럽 활동 때문에 오히려 '실험 양'이 된 교사들의 스트레스만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2013-10-15